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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몸에 좋다는 것을 먹어야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 하다 보니 결국은 이상신호가 왔다. 종합검진을 받기로 했다. 몸에 달린 각 기관별로 작은 방을 돌라고 했다. 세 번째는 복부검사를 하는 곳이었다. 진료침대에 만세하는 자세로 누워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팽창하는 갈비뼈와 불룩해지는 배. 눈을 내리깔고 무덤처럼 부푼 배꼽 주위를 보는데 문득 떠오르는 책과 영화가 있었다.


<노름마치>란 책이 있다. 노름마치란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명인을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이다. 책에는 강호에 숨어 있던 기생, 무당, 광대, 한량을 발굴하기까지의 내력과 한껏 괄시받았던 그들의 눈물겨운 사연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1974년 추석. 촌것들이 다닥다닥 붙어 십리 길을 걸었다. 십 원짜리 네 개를 얼마나 꽉 쥐었던지 극장 앞에 당도하니 손바닥에 다보탑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넘기는 페이지마다 감칠맛 나는 문장이 빽빽하다. 저자는 전통예술연출가인 진옥섭. 자신이 올린 무대의 관객석을 속절없이 뒤집어놓는 뛰어난 재담꾼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장가라는 직함을 하나 더 얹어주고 싶을 정도로 능수능란한 대조와 은유의 문장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그런 중에서 참 인상적인 대목이 하나 있다. 경남 고성 춤의 대가인 어느 할머니에게 “몸이 뭐예요?” 물었단다. 말씀하시길, “장독대이다. 위장, 간장, 대장. ‘장’자만 죄 모아 놓았으니 장독대가 아니고 뭐여?” 몸에 관한 숱한 이야기를 접했지만 이야말로 단연 말의 노름마치가 아닐 수 없다.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 씨 (출처 : 경향DB)


EBS에서는 일요일 심야에 <한국영화특선>을 시리즈로 보여준다. 작년 이맘때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나왔다. 1999년 봄. 주인공 김영호가 ‘가리봉 봉우회’ 야유회 장소에 만취한 채 나타난다. 20년 전 첫사랑의 여인, 순임과 함께 소풍을 왔던 곳. 철교 위에서 영호는 목젖이 보이도록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영화는 기적소리와 함께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마흔 살의 영호는 무직. 꿈과 사랑은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1994년 여름. 가구점 사장 영호는 직원 미스 리와, 마누라는 운전교습 강사와 각자 바람을 피운다. 1987년 봄. 영호는 닳고 닳은 형사. 열정은 식고 권태는 풍선처럼 빵빵하다. 군산으로 출장갔다가 카페 여종업원의 품에서 첫사랑 순임을 목놓아 부른다. 1984년 가을. 영호는 신참내기 형사. 한 청년을 고문하다가 그가 배설한 똥을 손에 묻힌다.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된 이등병 영호는 급박한 상황에서 M16을 발사한다. 걸을 수 없어 군화를 벗자 피가 쏟아진다. 모두에게 잔인했던 시절이다.


1979년 가을. 이제 영화는 마지막으로 치닫는다. 장소는 첫 장면의 야유회가 벌어진 바로 그곳. 구로공단의 야학생 열댓 명이 소풍을 간다. 교련복을 걸치거나 기타를 든 사람도 있다. 갓 스무 살의 영호와 순임도 보인다. 제과공장에 다니며 하루에 사탕 1000개를 싸야 하는 순임. 그녀는 영호에게 박하사탕을 건넨다. 영호에게는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사탕이다. 그 박하맛의 사탕을 녹이며 어렴풋이 첫사랑을 느낀다.


소풍간 사람들이 물가에 둘러앉아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를 부른다.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버리면…” 손뼉치며 노래하는 풋풋한 사람들. 참 이상하다. 모래밭에 궁둥이를 내려놓고 둥그렇게 모여 앉은 사람들 풍경이 장독대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항아리 같다. 석기시대 때 모래에 꽂아 사용하던 빗살무늬토기 같기도 하다.


무리에서 슬며시 빠져나오는 영호. 자갈 틈에 핀 쑥부쟁이 곁에 팔을 괴고 눕는다. 천천히 기울어지는 항아리. 항아리는 하늘을 무심히 바라본다. 항아리 뚜껑을 열면 툭툭한 된장 둘레로 맑은 간장이 괴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항아리, 영호의 눈에서 그 간장 같은 눈물이 흥건해진다. 무슨 서러움을 하늘에서 보았나. 그래서 눈물은 짠 것일까. 점점 육박해오며 고조되는 기차 소리. 한 줄기 맑은 눈물이 넘쳐 그의 야윈 볼에 이르렀을 때, 화면 스톱! 그리고 사람들의 흰 이름이 공중으로 계속 올라간다.


<동물의 왕국> 같은 자연다큐멘터리를 보면 동물들이 앞다리를 들고 꼿꼿이 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주 경계를 할 때 그런 자세를 취한다고 한다. 그 녀석 단순히 경계만 할까. 혹 배설의 쾌감을 느끼는 건 아닐까. 그런 자세를 취할 때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장독대의 항아리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몸을 가진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동물의 왕국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에서 고문하던 형사가 손에 똥을 묻히듯 실제로 순임 같은 여공에게 똥물을 끼얹기도 했었다. 야만의 시대였다. 누군가는 과거사는 그만 잊자고 설탕같이 달콤한 말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잊고 싶다고 마음대로 잊을 수 있는 도사가 아니다. <노름마치>의 어느 할머니 말씀마따나 누군가의 돌팔매에 쉽게 박살이 나는 장독대일 뿐. <박하사탕>의 마지막 장면처럼 물가 모래밭에 기울어진 항아리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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