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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여수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소설집과 <그대의 차가운 손>이라는 장편소설을 지었던 한강. 40대 초반의 그녀가 지난 2007년에 자신이 지은 곡을 직접 부른 CD와 노래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한강, 이름이 먼저 가슴을 서늘하게 스치고 지나갔고, CD에 담긴 그녀의 음색에 이내 젖어들어갔다. 최소한 반주 사이로 생 목소리가 귀청을 훑으며 내려와 가슴 깊은 곳에 박혔다. 이 노래의 음반작업을 지휘한 작곡가 한정림씨는 그녀에게 “절대로 노래를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불러요”라고 주문했다. 한강은 “그냥 있는 그대로라니… 그 말이 더 무서웠다”고 전한다.


“눈물도 얼어붙네/ 너의 뺨에 살얼음이// 내 손으로 녹여서 따스하게 해줄게/ 내 손으로 녹여서 강물되게 해줄게// 눈물도 얼어붙는/ 12월의 사랑노래.”


그 노래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12월 이야기’다. 한강은 1980년 1월 서울로 이사오면서 첫인상으로 ‘넓고 춥다’고 했다. 유리창의 성에, 얼어붙은 길, 딱딱 소리치며 이가 부딪치는 추위, 그래서 겨울만 되면 새 스웨터를 사고 싶었다고 한다. 겨울은 그렇듯 따듯함과 차가움이 격렬하고도 애절하게 충돌하는 계절이다. 언 몸을 녹이는 아랫목, 외투 안에 품고 가는 풀빵봉지의 온기, 무심코 스친 손끝의 따스함이 간절하다.


 




한강은 연극 <12월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문득 인디언 달력을 떠올렸다. 체로키족은 12월을 ‘다른 세상의 달’이라 했고, 수우족은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이라 했고, 샤이엔족은 ‘늑대가 달리는 달’이라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12월을 뭐라 할까? 아마도 ‘예수가 아기로 다시 태어나는 달’ 정도가 되지 않을까. 12월은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면서 ‘첫마음’을 기억해야 하겠지. 예수가 태어났을 때 들판의 목자들에게 한 천사가 나타났다고 한다. 와서 “메시아가 탄생했으니 가서 경배를 드리라”고 전했다지. “한 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 위에 누워 있을 텐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라 했다지. 그래서 12월은 짐승의 밥으로 오신 분, 무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그분을 기억하는 달이겠지.


겨울의 복음은 ‘따뜻함’이다. 아기를 품은 포대기처럼 따뜻한 손끝이다. 그래서 한강은 12월을 “눈물도 얼어붙는 달, 내 따뜻한 손으로 네 뺨의 살얼음을 녹여주고 싶은 달”이라고 적었다. “서늘한 눈꽃송이가 내 이마에 내려앉아 녹아내리는 달”이라고 했다. 그건 격렬한 열정이 아니다. 은근한 미소이며, 조용조용 ‘어제와 다른 내일 곧 오리라’는 희망이다. 늑대들마저 마중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랑’이다.


한강은 ‘서울의 겨울 12’라는 시에서 이렇게 전한다.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네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서울에 첫눈이 내린 다음날, 안철수가 대통령 후보 사퇴 선언을 한 뒤 13일 만에 ‘정치쇄신과 정권교체’를 위해 문재인 후보를 전폭적으로 돕겠다고 나섰다. 새누리당에서는 황급히 안철수의 합류를 평가절하하느라 정신없다. 평생을 대통령의 딸로, 퍼스트레이디로, 보수정당의 상층부에만 머물렀던 자칭 ‘여성대통령’ 후보와 평생 정치와 인연 없이 살다가 2012년에 만난 문재인과 안철수는 사뭇 다른 동기와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이 사람들은 각각 누구에게 복음이 될까, 잠시 생각해 본다. 문재인은 서민을 위해, 안철수는 청년을 위해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알 수 없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문재인과 안철수 캠프의 면면을 보자면 도종환, 안도현, 조국, 공지영, 유홍준 등이 포함된다. 박근혜 후보의 친구는 누구일까? 이회창, 김영삼, 이인제, 한광옥, 한화갑… 이름만 들어도 ‘퇴행적’이다. 고령화 시대에 걸맞은 ‘노인군단’이란 말인가. 새누리당에 입당한 손수조는 이 틈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예수가 가난한 이들에게 전했다는 ‘하느님 나라’를 ‘복음’이라고 부르는데, 실상 예수보다 먼저 태어난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전한 ‘무력에 의한 로마의 평화’도 ‘복음’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황제가 전한 복음과 예수가 전한 복음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맨발의 가난한 그리스도를 선택할 것인지, 홍포를 두른 황제를 부러워하면서 따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안철수는 “100년이 지나면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잠깐이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얼마나 귀한 사람들인지’ 알아야 한다는 요청이다.


이제 우리 뺨에 맺힌 살얼음을 녹여주고 강물 되게 해주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오래된 나뭇가지는 뚝뚝 부러지고, 다른 세상이 열리는 1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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