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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혁 | 서천군 농민회 교육부장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처럼 튀밥이 눈이 되어 내리는 느낌까지야 아니지만 읍내에서 여우고개를 넘어 오거나, 금강하구의 너른 들판을 질러 국립생태원이 들어선 길을 따라오다 보면 한적한 시골 마을에 “어! 이런 곳에?”라고 할 만한 아담한 도서관이 있습니다.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초등학교의 전교생이 70명 남짓이니 근방의 아이들이라고 해 봐야 몇 되지 않습니다. 옆 마을 친구집이라고 해도 아이들이 걸어서 가기에는 난감합니다. 초초고령사회인 농촌에서 마을 정책은 대부분 어르신들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더 절실했나 봅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정말 멋져서 그렇게 어른들을 설득해 나갔습니다. 엄마들의 진심과 의지에 마을 분들은 누룽지 공장을 하려고 했던 공간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태생부터 마을과 지역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빚을 짊어지게 됩니다.
“좁은 집에다 책 쌓아놓을 일 없어 좋다”며 집에 있는 책을 몽땅 내놓았고 억척을 떨어가며 여기저기 헌 책들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참, 도서관에는 책꽂이도 있어야지?’ ‘살림은 개뿔로 하나? 쥐뿔로 하나?’ 하고 섣부른 객기를 한탄할 즈음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은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 곳곳을 꾸며 주었고 뜻을 가상히 여긴 여러 분들이 십시일반 후원해 주었습니다. 좋은 상상력이 많은 사람들의 손과 발을 모은 것입니다. 그래서 태생부터 ‘나 잘났다’ ‘우리 잘한다’고 할 수가 없는 곳입니다만, 누가 만들어 준 게 아니라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 낸 도서관이라는 자부심만은 가득합니다. 다 자란 마을 아이들은 처음 인사 오는 신랑, 신붓감에게 가장 먼저 마을의 도서관을 자랑할 것입니다.
며칠 전 제2회 여우네 도서관 마을 축제가 열렸습니다. ‘여우네 풍물단’의 길놀이로 시작합니다. 농사짓는 틈틈이 연습한 풍물패는 ‘100명의 마을 사람들로 구성하고 목표는 세종문화회관’이라는 허풍으로 시작했지만, 초등학생부터 여든이 다 된 분까지 함께하는 고작 30여명의 풍물패가 고샅길을 돌아 입장할 땐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했습니다. 한글학교 학생인 할머님들의 합창은 하나도 맞지 않아서 처음엔 ‘돌림노래를?’하고 착각했지만 살아오신 연세만으로도 무대를 압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엄친아’(엄마랑 친한 아이)라는 이름으로 도서관에서 공동육아를 하고 있는 착한 엄마들의 율동은 ‘저 나이에 저런 동작을?’하는 경악을 자아냈지만 모자가 날아가 우는 아이와 그 아이와 똑같은 모자를 쓰고 춤추는 엄마들을 보면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야심차게 준비한 ‘해님달님’이라는 동극은 넓은 마당을 극복하기가 무리였고 마이크까지 지지직거리는 바람에 커다란 위기를 맞았지만 갑자기 등장한 객석의 아이가 오누이 숨은 곳을 호랑이에게 알려주어 당황한 호랑이가 대사를 잊은 후부터는 ‘해님달님’인지 ‘달님해님’인지 상관없이 박장대소가 이어졌습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흥!”
뒷짐 지고 쳐다만 볼 것 같았던 어르신들은 마당 한편에서 열린 짚공예, 새끼 꼬기 대회에서 예쁘게 꼬고 길게 꼰 것을 따지느라 야단법석이었지만 국회에서 ‘새끼 꼬기 순위를 가리는 특별법’이 통과되기 전에는 어차피 가려질 싸움이 아닙니다. 짚으로 엮은 알둥우리, 똬리 등을 보며 ‘저걸 할 줄 아는 인간도 곧 문화재가 되겠구나’ 싶어 잠깐 씁쓸했습니다.
전남 곡성군 죽곡면 주민들이 마을 시집을 읽고 있다. (출처 : 경향DB)
사회자의 역할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잔치가 시작도 하기 전에 사람들의 어깨는 들썩이는데 앞에서 얘기하는 사람은 뭔가 2% 정도 부족한 듯하고, 보다 못한 구경꾼들은 구경꾼의 지위를 망각하고 여기저기서 달려 나옵니다. “내가 해도 그만큼은 하겠다. 너 비켜라”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대동단결이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 2% 이상 부족한 사회자 덕에 함께한 누구라도 한마디씩은 하고야 말았습니다.
200명 정도가 모였고 100여명이 무대에서 뭔가를 했으며 50여명은 음식준비와 행사 진행을 하였고 50여명은 그냥 왔다 갔다 했는데, 아름다운 비율이었습니다. 딱히 손님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마을과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해 왔습니다. 군수님은 웬일로 바쁜 척 않고 오래도록 공연을 함께 본 후 축사가 아닌 축하를 해 주었고 장모님을 모시고 멀리 남원에서 구경 온 처남은 “매형, 이사 오고 싶어요!”라고 말해 잠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만.
“삶은 곧 축제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복수는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그들의 귀에 나의 즐거운 웃음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무라카미 류 <69> 중)
사실 여우네 도서관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돈, 일, 돈, 일만 반복하게 만드는 세상에 대한 거대한 복수극이고 이제 그 서막일 뿐이라는 것을 몇몇 눈 밝은 사람들만이 가만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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