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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


 

일요일마다 나는 한 모임에 나간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관광지다. 일요일은 다른 날보다 이 고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장사를 하는 나로서는 일요일에 가게를 떠나는 게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집사람이 가게를 보니까 가게를 완전히 닫는 것도 아니지만, 가끔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어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집단상가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어떤 날은 관광버스가 두세 대씩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물건을 팔든 못 팔든 나와 같이 있는 것이 집사람은 든든한가보다. 


한창 바쁜 시간에 모임에 간다고 빠져나올 때, 흔쾌하게 잘 다녀오라고 하는 집사람의 말을 들으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이런 사정을 헤아려 내가 가급적 오래 가게에서 머물 수 있게 멀리서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오는 지인도 있다. 나는 늘 그 사람에게 감사하며 달가운 마음으로 모임에 나간다.


 우리는 북녘땅이 보이는 곳에 모여 남북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묵상기도를 한다. 이 기도가 끝나면 평화통일을 주제로 쓴 시인들의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각자 책을 읽으며 본 평화에 관계된 글들을 발췌해와 읽기도 한다. 그리고 주위에 핀 꽃들이나 철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들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도 한다. 들판길을 같이 걷기도 하고 저녁식사를 같이하며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이 모임에서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이가 어려 많은 것들을 배우고 공부해야 할 여러 분야를 깨닫는다.


2000년도다. 나는 3개월 동안 교회에 나갔다. 내가 살고 있던 동네 교회에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며 교회에 나와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듣고, 2000년이 되면 나가겠다고 가볍게 말했다. 정말 시간이 흘러 2000년이 왔고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없고 해서, 신앙심도 없이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 나가니까 무엇보다도 반듯하게 두 시간 정도 앉아 있는 게 좋았다. 직장을 그만둔 지도 오래됐고, 하는 일이 혼자서 하는 일이라 평소 반듯하게 앉아 있을 일이 별로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경향신문DB)



또 기도시간에 구체적으로 기도를 하게 되는 것도 좋은 점 중 하나였다. 가령 혼자서 기도를 할 때는 우리 가족, 우리 사회가 평화로웠으면 좋겠다고 뭉뚱그려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남들과 같이 긴 시간 기도를 할 때는 달랐다. 교통사고를 당해 뇌를 다친 형은 기억력 되찾기를, 느타리버섯 농사 짓는 친구는 버섯이 잘되기를, 구조조정으로 해직당한 친구가 빨리 직장 잡기를…,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일요일 모임에 나가 평화통일 염원 기도를 하면서도 생각들이 조금씩 변했다. 이 시대에 평화통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폭을 좁혀, 평화로운 마음을 갖고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한 개인으로서 나는 무엇부터 실천해야 하는가 하는, 구체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다보니까 그동안 피상적으로 대해 막연하게만 바라다보이던 민족의 분단현실이 더 세분화되며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 모임을 처음 주창한 분의 뜻처럼 ‘남북 평화통일을 기도하고, 평화통일을 맞을 준비를 하고, 평화통일과 그 이후 사회를 위해 일할 피스메이커를 키우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평화의 씨앗이다’ 각성하고 일상의 자리에서 꾸준하게 평화를 위한 일을 실천할 때 평화의 씨앗들은 씨앗을 증식하며 더 큰 힘을 일궈나갈 수 있다는데….


(그래, 가게 비우는 걱정이나 하고 있는 일개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씨앗의 정신마저 모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씨앗은 얼마나 단호하고 희생적인가. 살아오며 품었던 살을 버려, 우주를 살로 바꿔놓고 마는 게 씨앗이 아닌가. 제 살을 버리고 우주의 씨앗이 되는 게 씨앗들 아닌가. 보라, 한강과 임진강과 예성강이 만나 큰물 이루며 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철책으로 가둬놓은들, 어디 저 물의 정신이 변하더냐. 서로서로 평등하게 몸 섞으며 더 푸르러지는 저 빛깔의 말을 들어라. 저곳이 비무장지대라는 말은, 저곳만이 비무장지대라는 말은, 너무도 가당치 않은 말 아닌가. 우리 한반도에서 저곳만큼만이 비무장지대라면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한반도 전체가 비무장지대여야 옳겠지만, 세계가 온통 비무장지대여야 되겠지만, 당장은 그런 세상이 힘들다면, 아 차라리 바꿔라도 보았으면. 한반도에서 저 비무장지대만큼만 무장지대가 되도록 바꿔보았으면. 그것도 무장지대를 어쩔 수 없는 국경으로, 국경선으로 내보냈으면. 그리 되라고 그리 될 날 꼭 올 것이라고 마음만으로라도 기도해보는 지금 나는 불온한 씨앗이더냐.)


남북한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는 마음에 격한 기도가 일어나기도 했고 기도 끝에 마음은 한결 후련해지기도 했다. 마치 철책에 갇혀 오갈 데 없는 갈대를 통과한 바람이 가슴속을 쓸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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