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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suam585@hanmail.net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매일 기도한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식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의 마크를 1년 동안 양복 안주머니에 가지고 다녔다는 아버지야말로 아이의 합격에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어본 사람만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기뻐하고 아파할 수 있습니다.

선거가 끝났습니다. 마을회관에 있던 벽보가 없어지고 바람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펄럭이던 플래카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단 하루 만에 모든 잔치가 끝났고, 세상은 전과 같이 조용합니다.


당선만 되면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정치인은 ‘고맙다’는 당선 인사 플래카드를 걸고 코빼기도 안 보이고, 낙선한 후보는 관청마다 거리마다 인사를 다니며 권토중래를 다짐하는가 봅니다.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과 19대 총선 당선자들 상견례 I 출처:경향DB

아내에게 큰 꾸중을 듣고 반성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관계 회복이 안될 것 같은 상황에서 아이들을 방패삼아 교회에 나가보는 저는, 선거 전 일요일, 코가 책상에 닿도록 오랫동안 한번도 내 마음속에 임하지 않은 하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민중이 승리하길, 진실이 승리하길, 눈물 말고 아무것도 없는 통합진보당이 승리하길 바라며 주 예수의 전지전능한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는 저를 보고 사모님이 눈물을 훔쳤던 것 같습니다. 일부러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통합진보당 기호 4번 강광석입니다”라고 인사드렸습니다. 성가대를 마치고 나오는 아내에게 얼굴도장을 찍지 못하고 방송차를 몰고 나왔습니다.

장흥·강진·영암 지역구에 출마한 우리 후보는 공무원노조 출신 해고노동자입니다. 어떤 후보는 8년 전부터 준비했다는 선거를 그이는 선거 40일을 남기고 결의했습니다. 진보정치의 끈을 이어야 한다는, 누군가는 하나의 밀알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로 출마했습니다. 조직도 없고, 경험도 없고, 선거본부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삽 하나로 논 전체를 쟁기질하는 심정으로 시작했습니다.

강진의 어떤 형님은 직장을 그만두고 사무국장이 되었고, 영암의 노동자 친구도 직장을 그만두고 선거상황실장을 맡았습니다. 장흥의 선배·후배들도 농사를 작파하고 가정을 뒤로하고 선거에 결합했습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했고 우리는 5명이 출마한 선거에서 3등을 했습니다.

시험을 본 학생이 매일 채점지를 보며 예상 점수를 맞추어 보듯, 우리는 선두권 3명이 혼전양상이 되면 당선될 수 있다는, 나름 계산서를 뽑아보며 자가발전·자체열광을 거듭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세뇌와 같은 것이어서 한 번 계산이 나오니 자꾸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 7시에 눈이 떠지던 것이 아침 6시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가 승리합니다”라는 멘트가 “우리가 이기고 있습니다. 당선으로 보답하겠습니다”로 바뀌었습니다. 발은 더 빨라지고 목소리는 더 커지고 급기야 일망타진 작전이 나오게 됩니다. 어느 마을 싹쓸이, 어느 마을 50%. 이런 식으로 강진은 5000표 그래프를 만들었습니다. 밥먹는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하루하루 다르게 변하는 유권자들의 반응을 보며 힘을 얻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이 일종의 선거병이라는 건데, 학술적으로는 ‘낙관적 상황호도증’이라는 중증이랍니다. 모든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은 자신들의 표가 30%를 넘으면 당선을 확신하게 된다는 겁니다. 선거병 중에 가장 모진 병이 ‘내리먹임증후군’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간부급에서 많이 발생하는 병인데, 받아들일 사람은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목표만 세워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사람 각자의 처지와 상황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고 오직 숫자를 채우느냐 못 채우느냐만 중요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고 사람의 존엄은 없고 그래프만 있습니다. 그 병을 앓다가 몇은 나갔다 돌아오지 않았고, 몇은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회계처리 몇 개만 끝나면 선거상황은 종료되지만 진심과 사랑, 애절함과 눈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근 40일 동안 묵묵히 자식과 남편의 무신경을 보아 넘겨준 어머니와 아내의 넉넉한 품이 남았습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당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선거운동원들이 남았고, 자신의 것을 먼저 내던지면서 운동에 복무하는 주변분들의 헌신과 열정이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선거 끝나고 방송차를 반납하러 장흥에 갔는데, 후보와 후보 배우자가 이 세상에 본 가장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거리에서 낙선인사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걸어본 사람은 모든 것을 털고 다시 일어날 줄 압니다. 이긴 사람들은 미치도록 기뻐하고 진 사람들은 땅을 치고 통곡하는 것으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2012년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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