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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끝자락에 자리한 집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 도심으로 볼일을 보러 나갈 때면 ‘서울 백병원·평화방송’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횡단보도를 건너 50m쯤 걸어가야 하는데, 그 짧은 길을 지날 때마다 나는 홀연히 감개무량하여 남들이 이상하게 보든 말든 벌쭉벌쭉 웃기도 하고 몽상에 잠기기도 한다. 


사람들이 예사롭게 스쳐지나가는 ‘마른내길’ 인근이 바로 조선시대 ‘건천동(乾川洞)’이라 불린 유서 깊은 동네다. 강릉에서 올라와 불행한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난설헌 허초희가 높고 아름다운 시흥을 돋우었던 본가가 여기 있었다. 걸출한 학자였으나 입신출세에 뜻이 없어 사직을 거듭했던 퇴계 이황이 임금이 부르면 마지못해 상경해 머물던 가택도 이 주변에 있었다. 


생전에 불운한 무장이었으나 사후에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장수가 된 충무공 이순신이 나고 자란 마을도 바로 이곳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숲에서 그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다. 옛길들을 지우고 들어선 고층빌딩과 자동차 경적의 소음 속에서 시간이 판가름한 오욕과 영광을 생각하면 절로 무연함에 젖게 된다.


서울에 남아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인물과 길을 통해 톺아낸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었다. 그런데 책에서 주로 다루는 경복궁 서쪽마을 ‘서촌’의 그림이 아무래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워낙에 공간지각력이 떨어지는 길치인 데다 상경한 지 이십여년이 넘었지만 사대문 안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는 촌것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서울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의 서촌 골목길 풍경 (경향DB)


그래서 저자 중 한 사람인 김창희 선생이 길잡이가 되어 ‘북 트레킹’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손을 번쩍 들었다. 초여름 이른 더위가 아스팔트를 끓이는 날이었다. 바야흐로 내 발로 ‘한양’을 밟아보기 위해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였다.


한국 사회의 무시무시한 변화와 발전의 속도에 걸맞게 서울 사대문 안에는 조선 초기에 지어진 건물이 단 한 채도 남아있지 않다. 기껏해야 조선 중기 한옥의 주춧돌이 빌딩들 아래 눌려 있는 정도다. 


하지만 집과 사람은 사라져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 길을 따라 첩첩이 쌓인 시간 속을 걸었다. 안평대군의 옛집 비해당, 누상동과 옥인동 사이 골목길의 윤동주 자취집, 친일파 윤덕영의 벽수산장, 화가 이쾌대의 형으로 한국미술사와 복식사에 독특한 족적을 남긴 이여성의 옥인동 집, 중인문화의 절정인 옥계시사의 배경인 송석원, 해방 후 미 군복을 입고 조선에 돌아온 유일한 여성이자 파란만장한 인생사의 주인공인 앨리스 현의 원적지 등. 눈 밝은 길잡이가 없었다면 무심히 지나쳐버리고 말았을 풍경이었다. 비해당은 덤불에 가려져 그 어림만 더듬을 수 있고 윤동주의 자취집은 볼품없는 다세대 주택에 불과했다. 윤덕영의 벽수산장은 ‘박노수 고택’으로 정비 중인 일부 지역 외에는 재개발로 흉흉하고, 앨리스 현이 머물렀을 것으로 짐작되는 집은 치킨집이 되어있었다. 시간은 무자비하다. 전쟁과 개발의 유사성은 그 파괴적 속성에 있다. 하지만 마음의 눈을 홉뜨면 폐허 속에서도 사라질 수 없는 역사가 보인다.


재미있는 점은 길잡이인 김창희 선생과 공저자인 최종현 선생이 가장 주목한 것이 서촌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의 ‘앵글’이라는 사실이다. 세상 만물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비운의 왕자 안평대군은 권력 세계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북쪽으로 창을 내어 집터를 닦았다. 양반문화에 대응해 자신감에 넘친 중인들은 인왕산 기슭에서 남산을 정면으로 내다보는 넓은 시야를 확보했다. 그런가 하면 이완용보다 덜 유명하지만 더 악랄하기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친일파 윤덕영은 조선왕조의 궁궐을 내려다보며 프랑스 귀족의 성을 본뜬 괴이한 대저택을 지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곧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인 셈이다. 


2013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은 어떠한가하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역사는 아직도 개발의 불도저 앞에서 촛불처럼 위태롭다. 물론 주거환경이 심각한 상태에서 마냥 재개발을 미룰 수 없을 테고 모든 문화재와 유적을 발굴해 보존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도시를 설계하고 행정을 담당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부수고 무엇을 세울 것인가를 결정하기에 앞서 단 한번만이라도 이 길을 직접 걸어보시라고 권유하고 싶다. 알면, 보면, 상상하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역사를 알면 수많은 이들이 앞서 밟았던 다리에 콘크리트를 발라버리는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것이다. 조상들의 소중한 식수원이었던 우물이 괴물이 튀어나올 듯한 암굴로 방치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플 것이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살고 사랑했던 옛사람들을 상상하면 비정한 도시가 정겨워질 것이다. 서울은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이기 이전에 오래된 삶터이기 때문이다.



김별아 | 소설가 ywba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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