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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선택(No Easy Choice)’. 세계적인 정치학자 헌팅턴의 책 제목이다. 경제발전이냐, 민주주의냐? 성장이냐, 분배냐? 이처럼 제3세계는 쉽지 않은 선택에 놓여 있다는 주장이다.

요즘 떠오르는 것이 이 책 제목이다. 최근 상한가를 치고 있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만 해도 그러하다. 곧 자신의 결정을 밝히겠지만, 교육감 3기인가 아니면 도지사 도전인가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진보 교수운동의 상징인 그는 교육감 선거에 나서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걸어 복지논쟁을 촉발시켰을뿐더러 혁신학교, 창의지성교육 등 낙후한 한국 교육의 혁신에 중요한 성과를 남겼다. 따라서 교육감을 더 하면서 자신의 교육혁신을 어느 정도 완성하고 싶을 것이다. 특히 마땅한 후계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도지사 선거에 나갔다가 보수적인 교육감이 당선되어 어렵게 이루어 놓은 성과들을 허물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도지사 출마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여야, 나아가 진보정당들까지도 희망이 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을 정치의 무대로 불러내는 ‘시대의 부름’을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사실 고민스러운 것은 그의 선택이 단순히 경기도지사 선거를 넘어 지방선거 전체에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이 연대를 하지 않을 경우 새누리당이 압승할 것은 자명하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연합이 영입에 공을 들여온 김 교육감의 도지사 출마는 야권연대의 촉매가 될 수 있다. 민주당 당원이 현역인 서울시와 인천에 이어 경기도지사까지 민주당 후보가 나설 경우 선거연합은 어렵다. 그러나 김 교육감이 야권 단일후보로 나설 경우 연대가 쉬워진다. 그리고 이 같은 실험에 기초해 부산에서도 지지도가 높은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야권 단일후보로 만드는 등 야권연대의 새로운 모형을 제시함으로써, 지방선거에 새로운 바람과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환호하는 안철수-김상곤-김한길 (출처: 연합뉴스)


정치의 딜레마, 정확히 표현해 정치적 선택의 딜레마와 이에 따른 쉽지 않은 선택은 김 교육감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야권연대를 포함한 야권의 지방선거 전략과 야권의 미래도 딜레마이고 쉽지 않은 선택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야권연대가 없는 지방선거의 결과는 뻔하다. 그러나 문제는 야권이 연대를 해 지방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한국 정치의 미래가 밝아지거나 희망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연대를 통해 야권이 승리한다면 그 결과는 어차피 희망이 없는 민주당이 2010년 지방선거처럼 다시 한번 선거결과에 안주해 당의 혁신을 미룸으로써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더 큰 패배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암환자에게 진통제를 주어 일시적으로 고통만 잊게 하는 결과, 아니 근본적인 수술을 늦춰 병만 악화시키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다. 사실 오는 총선과 대선, 나아가 한국 정치의 미래를 생각하면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가 성사되지 않아 민주당과 야권이 참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민주당만이 아니다. 새정치를 이야기하면서도 낡은 정치인들을 대거 영입해 사실상 ‘재활용정당’이 되고 있는 새정치연합도 참패를 해야 위기의식을 느낄 것이다. 별로 논의하고 싶지 않은 통합진보당은 논외로 하더라도 정의당과 노동당 등 진보정당들도 혁신을 위해서는 존폐의 위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야권연대를 하지 않고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압승을 거둠으로써 가뜩이나 불통으로 나가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 날개를 달아줄 수도 없지 않은가.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를 할 것인가는 정치적 딜레마이고 쉽지 않은 선택이다.

원고를 보낸 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양당의 김 교육감 영입노력이 매개가 된 것 같고 공멸의 위기가 야권연대를 택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지방선거의 참패는 면하게 됐다. 그러나 두 정치세력이 근본적인 혁신을 하지 않는 한 ‘연대를 통한 지방선거 참패 회피’가 오히려 총선과 대선이라는 더 큰 패배로 귀결될 것이라는 나의 논지는 변함이 없다. 결국 문제는 통합의 질과 콘텐츠다. 내용이 담보되지 않은 통합은 지분과 계파 싸움으로 독이 될 것이 뻔하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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