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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안철수가 합쳐 신당을 만들기로 한 것은 지방선거에서 공멸을 면하게 됐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그러나 문제는 통합의 질과 콘텐츠로서 근본적인 혁신이 동반되지 않은 통합은 오히려 재앙이 될 것이다.” 두 당의 통합뉴스를 접하며 지난 칼럼(2014년 3월3일자)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이후 통합 과정을 보고 있자니 우려대로 통합 내용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통합 과정이다. 낡은 정치의 전형인 민주당은 그렇다고 치자. ‘새정치’를 내걸고 입만 열면 국민을 이야기해온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연합 내부의 민주적 논의 없이 혼자 합당을 결정하고 밀실에서 합의하는 것이 새정치인가? 당을 단순히 개인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3김식의 사당정치, 직원들과 전혀 상의하지 않은 CEO의 일방적인 인수·합병 결정이 안 의원이 이야기해온 ‘새로운 시대의 새정치’인가? 소도 웃을 이야기이다. 잡음이 생기고 삐걱대더라도 민주적 논의를 거치는 것이 새로운 정치, 아니 ‘새로운’이란 형용사조차도 필요 없이 ‘상식의 정치’이다.

통합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통합 논의를 보고 있노라면, 안 의원이 새정치를 민주당과 민주세력의 우경화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민주당을 우경화시켜 새누리당에 가까이 가는 것이 새정치인가? 사실 개인적으로 안 의원이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가장 우려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그 중간에 안철수신당이 필요할 정도로 이념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인가, 민주당은 과연 우경화가 필요할 정도로 ‘좌파 정당’인가 하는 질문이다.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두 정당은 사생결단으로 싸우고 있지만 대북정책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 최장집 교수는 두 정당간의 투쟁을 “차이 없는 사생결단 싸움질”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을 조건으로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제안했고 이에 당시 여당 대표였던 김근태 의원 등이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답했다. “사실 한나라당과 우리랑 별 차이가 없다.” 솔직한 고백이다. 한·미 FTA, 쌍용차 해외매각, 제주도 해군기지 건립 등 모두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것이다. 그리고 연정에 격렬히 저항했던 김근태 대표는 얼마 뒤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의 반대에도 노동법 개악안을 한나라당과 사이 좋게 손잡고 날치기 통과시켰다.

새정치민주연합 출범 (출처 : 경향DB)


사정이 이러하거늘 새 통합야당이 우경화한다면 새누리당과의 이념적 차이는 더욱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두 정당간의 의미있는 차이는 지지기반인 지역밖에 남지 않아 지역주의가 오히려 강화될 우려까지 있다. 그럴 바엔 노태우 구상처럼 새누리당과도 통합해 일본의 자민련 같은 거대보수대연합을 만들고 군소진보정당을 키우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것이 안 의원이 강조하는 국민통합에도 나은 것 아닌가? 그러면 중원, 즉 중도적 유권자를 잡기 위해 우경화가 필요한가? 민주당은 2007년 대선 패배 후 뉴민주당플랜이라는 똑같은 논의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이어진 무상급식 논쟁과 이를 통한 민주당의 승리가 보여주듯이 우경화가 승리라는 공식은 착각일 뿐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 같은 과정에서 4·19, 6·15선언 등을 정강·정책에서 삭제하겠다고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밝히고도 여론의 지탄을 받자 사실무근이라고 오리발을 내민 안 의원의 낡은 정치행태이다. 소신이 그렇다면 정정당당하게 논쟁을 하거나 아니면 생각이 짧았다고 깨끗하게 사과하는 것이 새정치이다(여론이 심상치 않자 안 의원은 뒤늦게 사과를 했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안 의원은 여전히 정치개혁의 중요한 자산이다. 문제는 안 의원이 시행착오를 끝내고 빨리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안 의원은 더 늦기 전에 초심으로 돌아가 통합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만이 안 의원이 기대에 걸맞게 낡은 정치를 혁신하고 한국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다. 안 의원은 자문해야한다. 사당화와 우경화가 안 의원이 원하고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정치인가?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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