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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5일,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세종청사에서 11차 전원회의를 열고 2018년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확정했다. 재계에서는 벌써부터 고용을 줄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찬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지만, ‘고용감소가 불가피하다.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우려에 많은 국민들이 동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언론들이 ‘업주보다 더 많이 벌어가는 알바’라는 선정적인 문구로 국민들의 불안을 파고든다. 최저임금 문제를 이른바 ‘을과 을’의 전쟁으로 몰아가려는 뻔한 수법이다.

자영업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비용 중에 일부일 뿐이다. 설비비, 인테리어비, 전기요금, 관리비, 임대료, 가맹점비, 대출이자 등 많은 비용이 있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비용의 지출은 당연히 여기면서 인건비의 지출에 유독 인색한 듯하다. 하지만 이런 인식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의 ‘시장경제’는 계속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경제의 초석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저서 <도덕감정론> <국부론>의 내용을 살펴보면 오히려 자본의 이익을 최소화하고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경제체제로 ‘시장경제’를 구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제교과서를 살펴보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장에서 적정한 가격이 결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적정한 가격’을 찾아보기 어렵다. 애덤 스미스는 적정하지 않은 가격은 임금이 높아서가 아니라 자본가의 욕심에 따라 이윤이 오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정의롭고 올바른’ 완전경쟁시장으로 발전하면 이윤이 줄어든다는 것, 그러기 위해 “사회를 기만하고 억압한 적이 있는 계급” 즉, 자본가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걸러내야 한다는 것이 <국부론>의 주요 논점이다.

자본에 대해 이처럼 박한 평가를 한 이유는 국부창출에 기여를 하지 않으면서 ‘이윤’만을 노린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관점을 21세기 자영업 현장에 적용해보면 열심히 일하면서 노동을 하는 자영업자와 알바는 노동자에 해당하고, 건물주, 가맹점본부, 금융기관은 자본가에 해당한다. 최저임금을 올리기 어려운 이유는 공정하지 않은 임대료, 수수료, 이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의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 애덤 스미스가 우려했던 대로 우리 ‘을’들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된다.

공정하지 않은 임대료로 논의를 좁혀보면, 스스로 자영업을 영위할 생각이 없으면서 점포를 소유하고 임대료를 자영업자에게 거둬들이는 구조가 자영업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다. 실수요자, 즉 자영업자가 아닌 ‘돈 많은’ 사람들이 점포를 매입하겠다고 뛰어드는 순간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게 되고, 그에 대한 투자비를 회수하겠다고 임대료를 올리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런 행태는 낮은 비용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는 점에서 경제를 어지럽히는 매점매석과 동일한 부작용을 낳고 자유주의 이념에도 배치된다.

정리하자면,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구조는 ‘을과 을’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공정한 노동대가에 대한 불로소득의 침해’를 막아내기 위한 사회적 합의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불로소득을 줄여 적정한 노동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는 수단의 하나이다. 따라서 불공정한 갑의 횡포를 막고 자영업용 부동산의 불합리한 소유 및 임대구조를 개선하려는 정책이 병행되어야 효과가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불로소득을 재테크 따위로 부르면서 장려하거나, 취할 수 있는데 안 하면 바보가 되는, 재력가나 고위공직자의 필수 덕목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부’가 철학적으로 용인되는 근거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대가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땀 흘린 대가가 불로소득보다 존중받을 수 있어야 정상적인 사회이며 튼튼한 시장경제가 지속될 수 있다.

강세진 | 박사·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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