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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얼마나 뜨거운가, 등짝을 뜯어묵을라 카네.” 밭에 매달려 있다가 돌아오는 아주머니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없고, 어린 고양이 두 마리가 가만히 지켜본다. 올해 마을에서 보는 새끼 고양이 전부. 여름내 제법 몸이 불어난 녀석들은 볕이 뜨거울 때는 나무 그늘이 지는 돌담에 올라앉아 있거나, 우리집 계단참 밑에 웅크리고 있거나 했다. 여름 내내 집을 나설 때마다 고양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살피는 것이 몸에 익었다. 막내 아이는 유난히 고양이를 좋아해서 한참 울다가도 고양이 소리만 나면 울음을 그치고 쫓아간다. 혼자 고양이 흉내를 내면서 놀기도 하고, 저녁이 되어서 뜨거운 바람이 조금 식으면 아이 손을 잡고 고양이를 찾아가는 고양이 산책도 한다.

지난 십 년 사이 해마다 마을에는 대여섯 마리, 혹은 예닐곱 마리쯤 되는 새끼 고양이들이 태어났다. 마을에 눌러사는, 사람과 고양이와 개를 헤아리면 고양이가 사람만큼은 살고 있겠다 싶은 정도였다. 사람과는 달리 고양이는 젊은 고양이도, 어린 고양이도, 늙은 고양이도 있어야 할 만큼 적당히 어울려 있었다. 겨울이 가까워지면 다들 어디로 가는지 마을에 사는 고양이 숫자는 늘 고만고만했는데, 그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집이 두 집, 앵두나무집과 동사(마을회관) 뒷집. 거기에 동사에 모여서 밥을 해 먹는 할매들 중에도 고양이 밥을 챙기는 분이 있어서, 마을 고양이들은 동사와 그 두 집을 오가며 지냈다. 사람들 일하러 나간 때에는 앵두나무집 마루에도 올라앉아 있고, 돌담 위에서 마을 사람들 지나다니는 것도 쳐다보고, 산나물 해 와서 널어놓으면 빙 둘러갈 줄도 알고, 깻단 세워 놓은 사이를 빙글빙글 돌아다니거나, 경운기 짐칸 밑에 길게 늘어져 있거나.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랬던 것이 지난해, 마을에 몇 집 빈집이 생겼다. 앵두나무집과 동사 뒷집도 고양이들한테는 빈집이나 마찬가지인 집이 되었다. 동사 뒷집 할매는 요양원에 갔고, 앵두나무집도 할배가 떠나시고는 늘 골목길에 세워져 있던 경운기가 치워졌다. 그 집 할매는 오랫동안 병원에 다녀와야 했고. 빈 앵두나무집에는 깜깜해질 때까지 마루청에서 내려오지 않는 고양이들이 있었다. 동사에 모여 밥을 해 먹는 할매들도 몇이 줄었다. 고양이 밥이 따로 놓이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 되었다. 대여섯 마리쯤 돌아다니던 새끼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털은 ‘우시우시’하고, 얼굴은 쪼삣한 채로 여름을 보냈다. 어미들도 돌담 위를 걷다가 우아하고 가볍게 지붕 위를 타넘고 다니던 녀석들이, 몇 걸음 더 돌아가서 처마 끄트머리를 붙잡고서야 지붕 위로 올라가고는 했다. 고양이들은 식구들 여럿이 함께 모여서 가만히 지내는 시간이 길었다. 여름을 그렇게 보낸 새끼들은, 가을이 와도 몸집이 작았다. 그래서인지 새끼들이 어미 곁을 떠나지 못했던 것. 새끼들이나 어미들이나 겨우 비쩍 마르지만 않은 정도로 겨울을 맞았다. 좀체 그런 일이 없었는데, 마을 어귀에 내어놓은 쓰레기봉투가 찢어지는 일도 생겼다. 그렇게 지난 한 해 동안, 마을 고양이들은 빈집 살림을 살았다. 한 해를 그렇게 보낸 고양이들은 올해 새끼를 두 마리만 낳았다.

여기 악양면은 오래전부터 농사가 잘되는 땅이라, 살림이 넉넉한 시골 마을이었다. 농사 잘되는 것을 두고 “각설이패가 들어와서 삼 년을 빌어먹고도 한 집이 남는” 동네라고도 말했다. 지금도 형편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면에 있는 초등학교에는 아이들이 백 명쯤 다니고, 새로 이사 들어오는 젊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도 여유롭게 대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 다른 시골 마을에 견주어서 그렇다는 얘기이다. 할매 할배들 돌아가시면서 빈집이 늘고, 자기 살림과 마을 살림을 함께 꾸려갈 줄 알았던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은 여느 시골과 다르지 않다. 용케 빈집이 많지 않은 마을이었지만, 앞으로 빈집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저녁이면 빈집들 사이에서 고양이들이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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