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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시험에 불과하다. 그것도 매해 되풀이되는 시험일 뿐이다. 예비고사, 학력고사에서 현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이르기까지 시험의 이름, 출제되는 과목과 문제의 형식은 바뀌었지만, 시험을 둘러싼 야단법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시험 전날부터 미디어는 시험장 분위기 등을 스케치하며 톱뉴스로 다룬다. 시험이 끝나면 시험문제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SNS에서 벌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랬다. 

시험 준비는 은밀하지만 치열하게 장기적으로 이뤄진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연보(2010~2014)’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전국에는 총 7만6030개의 학원이 등록되어 있는데, 그중 학교교과 교습학원으로 분류되는 학원이 전체의 92.3%에 달할 정도로 많다. 시험 준비에 상당한 돈이 투여된다. 2014년 한 국회의원은 KDI 자료에 근거해 사교육 시장의 규모는 32조원 정도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사교육산업의 위용은 다른 산업과 비교해보면 분명해진다. 한국의 출판산업 규모는 2016년 기준 고작 7조8000억원이다. 사교육산업은 출판산업보다 몇 배나 규모가 큰 산업이며, 2020년에 32조원 정도의 시장규모에 도달할 예정인 소프트웨어산업이나 2010년의 패션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대단한 산업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사실상 생애 필수 경로가 되어버린 대학진학이 사교육산업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다.

1980년 고등학교 졸업생 중 27.2%가 대학에 진학했다. 1990년의 대학진학률은 33.2%로 높아졌다. 1995년엔 51.4%가 대학에 갔다. 2000년 68%의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진학률은 2005년 82.1%까지 치솟았고 2008년 83.8%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1980년에 대학에 입학한 사람이 1984년에 졸업하고 1988년에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다면, 고등학교 졸업자 중 27.2%만 대학에 진학했던 자신과 달리 그들 자녀의 83.8%가 대학생이다. 

매해 신입생이 대학에 들어오고, 신입생이 들어오는 숫자만큼의 대학생이 졸업이라는 과정을 거쳐 대학을 떠난다. 부모와 사회의 기대에 의하면, 이들은 학교를 떠나면 어디에 자리 잡든 노동과 직업의 세계로 진입해 있어야 한다. 입학하기 전까지 사교육에 투자된 돈을 생각하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대학에 들어온 사람이 졸업 후 노동과 직업의 세계로 진입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통계자료는 취업률이다. 2011년 65.6%, 2016년 64.3%의 대졸자가 노동과 직업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통계는 말해준다. 전체 학령인구 10명 중 8명이 대학에 들어왔는데, 대학에 들어온 사람 10명 중 6명 정도만 노동과 직업의 세계로 진입한 셈이다.

직업 세계로의 진입이 확인되지 않는 사람을 부르는 호칭은 다양하다. 이들을 부르는 호칭은 때로는 희망사항을 표현한다. 어떤 경우에는 인정한다는 속뜻을 지니기도 한다. 하나 심한 경우, 게다가 흔한 경우 이들은 매도되는 단어로 명명된다. 이들을 취업준비생, 줄여서 ‘취준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노력과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사회로부터 인정받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명칭이다. 이들이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 이른바 ‘공시족’으로 변주되면 안타까움의 대명사가 되기도 한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공시족’은 2016년 기준 28만9000명에 달한다. 한 해 28만9000명이 지원하면 6000명 정도가 공시족에서 벗어난다. 28만9000명 중 1.8%만 누리는 행운이다.

‘취준생’이나 ‘공시족’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노력하고 있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이들은 학교를 졸업했는데 취업도 못한 주제에 노력조차 하지 않는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로 분리되어 의지도 없고 게으르며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 문제집단이라는 낙인을 피하지 못한다.  

‘취준생’에게 눈높이를 낮추지 않는다고 야단치고, 1.8%만의 행운에 목을 매다니 어리석다고 ‘공시족’에게 핀잔을 늘어놓고, 수긍할 만한 노동의 조건으로 고용할 의사도 없으면서 형식상 NEET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에게 온 책임을 돌리기는 매우 쉽다. 이들을 NEET로 명명하면 오로지 이들의 무능력과 무의지만 부각된다. 일을 하지 않는 것과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 자칫 잘못하면 NEET로 명명되어 책임을 추궁당할 수도 있는 이들은 사회가 지정한 생애필수경로를 열심히 따라갔을 뿐이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그리고 2차 베이비붐 세대(1968~1974년생)는 스펙을 관리하지 않고, ‘노오오력’을 하지 않아도 대학만 졸업하면 자신의 부모보다는 나은 위치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자녀로 19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보다 성공하기 쉽지 않은 첫 번째 세대이다. 그들은 잘못하지 않았다. 1990년대에 태어난 그들의 사정이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노오오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사실상 낙인 호칭이 되어버린 NEET라고 호명될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이들이 걸어야 하는 필수생애경로를 설계하고 따르라고 압력을 가한 사회는 어디에 있는가?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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