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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뉴스에 무슨 ‘어머니 봉사단’이라는 분들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서명하는 사람들을 폭행하고 서명대를 부숴버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어버이연합’ 분들과 쌍벽을 이루는 극우 할머니부대가 등장한 모양이다. 평균수명이 늘자 노익장을 과시하는 분들이 많아진다.

직접 보고 싶다. 정성껏 그들의 주장과 행동을 곁에서 지켜보고 싶다. 지난주 토요일에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에 갔을 때는 안 보였는데 언제쯤 직접 볼 기회가 올지. 시골에서 대절버스 타고 다시 상경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무슨 한이 맺혔기에 남의 서명대를 부쉈을까? 그것도 세월호 서명대를. 이분들은 자식도 안 키우는지 ‘어이 상실’이다. 생각이 다르면 따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든지, 그도 아니면 외면하거나 비난하는 정도면 될 것을 굳이 남의 집회장을 찾아다니며 방해하는 것일까? 이 소식을 듣고 엉뚱하게 얼마 전에 있었던 장성 노인요양원 방화사건이 떠올랐다. 치매가 있는 그 노인은 자기가 수용(?)되어 있는 노인요양원에 불을 질렀다.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이 불 지르는 것 외에 없던 것으로 보인다. 자식에 대한 원망 때문이었을까? 요양시설에 대한 억압감? 삶의 어느 대목에서 맺혀 있던 증오들을 엉뚱한 곳에 폭발시킨 것일까? 인지력이 없어서 실수를 한 것일까? 마음이 참 아팠다.

‘봉사’라는 단어와는 안 어울리는 ‘어머니 봉사단’의 행동 역시 가슴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파괴와 공격 외에는 다른 수단을 찾지 못하고 자신의 문제를 외부로 돌림으로써 자신을 더욱 황폐화시키는 것으로 보여서다.

세월호 침몰사고 99일째인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 난간에 노란신발 한 켤레가 묶여 있다. (출처 : 경향DB)

이런 생각 끝에 문득 내 과거(?)가 떠올랐다. 1980년대에 민정당 정당행사를 방해하고 노태우 선거유세장을 쫓아다니며 노골적인 반대집회를 벌였던 기억이다. ‘학살정권’이라 일컫는 민정당만 반대한 것이 아니다. 1986년 인천 5·3 항쟁 때는 재야인사 중심의 민통련 집회를 방해하고 무력투쟁을 선동했었다. ‘어머니 봉사단’의 세월호 서명 방해와는 무엇이 다를까. 정의? 역사의식? 민중의식? 다른 것 못지않게 같은 점도 많아 보인다.

시청 앞 집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연설을 할 때 내 기억에는 서너 번 이상 야유가 터져나온 것 같다. 야유를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다수 야당의 대표 입장과 유가족 입장과 시민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왜 야유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내가 아는 진보진영의 어떤 이가 동작을 보궐선거에 나온 노회찬 후보를 정치공학만 좇는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았다. 이 말을 들었을 때도 누군가 나를 ‘배신자’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까 두려워졌다. 있다. 가슴이 터지도록 억울했던 기억과 함께 배신자로 몰렸던 기억이 난다. 오래전인데 민중당 후보로 출마한 나를 ‘안기부 첩자’라고 대놓고 비난하던 선배가 있었다. 총선이 끝나고 간첩단 사건으로 안기부에 체포된 나는 첩자 노릇 제대로 못해서 처벌받은 것인가 그 선배에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기회는 없었고 그분은 지금 새정치연합 현직 의원이다. 진짜 배신자였던 적도 있다. 한 여인에게. 또 가족에게. 나는 역시 억울했지만.

동작을에 진보정당들이 나란히 출마하는 속사정은 들어보지 않아도 이해가 된다. 새정치연합 의석 하나 느는 것보다는 진보정당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 정치사에 더 중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녹색은 7월의 녹음에만 있는 게 아니고 사람 사이에도, 소통 방식에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게 시대의 의제다.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얼마든지 자기 주장을 펼치는.


전희식 | 농부·‘똥꽃’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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