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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계속 날이 흐리고 비가 내렸다. 양평의 에너지독립하우스 두 집의 에너지 공급을 책임진 태양광발전소의 에너지 생산량도 평상시의 10분의 1로 떨어졌다. 두 집에는 비상이 걸렸다. 반드시 필요한 것에 속하지 않는 에너지의 소비는 자제하고, 저장시설에 남아 있던 에너지를 아껴 써야 했다. 목욕과 샤워를 뒤로 미루고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 사용을 조절해서 에너지 사용량을 보통 때의 절반 이하로 줄였다. 이렇게 해서 태양에너지가 오지 않은 이틀을 무사히 넘겼다. 그래도 특별한 불편은 없었다. 생활을 자연에 어느 정도 맞춤으로써 위기를 넘긴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제약을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도 자연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런데도 경제에 취한 사람들은 자연을 마음껏 이용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그 대가로 어떤 형태로든 보복이나 재앙을 당한다. 경제에 취하면 자연은 고려에서 사라진다. 경제라는 블랙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이용 대상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자연을 고려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사람도 종종 고려에서 배제된다.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 요구는 경제회생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개헌 논의는 “경제의 블랙홀”이 된다. 정당한 주장과 건전한 논의를 그들이 사로잡혀 있는 경제라는 블랙홀로 빨아들여 없애는 것이다.

대가는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강물이 썩고 벌레 같지 않은 벌레가 창궐하는 것은 물론이고, 잊을 만한 틈도 주지 않고 사고가 일어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제라는 블랙홀에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사람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할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은 그것이 자연의 보복성 결과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적폐로 인한 것이고, 안전수칙 준수 지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고, 스스로 안전하지 않은 곳에 뛰어들었기 때문일 뿐이다. 그들은 적폐를 없애고 안전의식을 높이기만 하면 이런 일들이 사라진다고 믿는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 사고현장인 환풍구 주변에서 시민들이 17일 사고 직후 덮개가 내려앉은 환풍구 안을 들여다보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_ 연합뉴스


그러나 경제에 취해 자연을 고려에서 삭제한 사회에서는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이번달 초에 월성 원전에서 취수구 펌프 속으로 잠수사가 빨려들어가 사망한 사고는 안전을 위해 펌프를 꺼야 한다는 상식적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만일 잠수사의 안전을 위해 펌프 작동을 중단했다면, 가동정지 상태에서도 열을 내뿜는 원자력발전소 안에서 다른 큰 사고가 일어났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 경우의 안전수칙은 상식과는 정반대로 발전소에서 원자핵의 분열이 중단된 상태라고 해도 펌프를 돌려야 하는 것이었고, 가동 중인 펌프 주변을 청소해서 물이 제대로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원자력이라는 자연을 이용하면 언제 빨려들어갈지 모르는 펌프 옆에서도 일을 해야 하고, 잠수사 한 사람의 생명쯤은 고려에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지하주차장의 환풍구 붕괴사고도 안전만을 강조한다고 해서 없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자동차를 만들고, 그것들을 세울 곳이 없어 땅속을 파헤쳐대고, 조금이라도 돈을 더 만지기 위해 하청에 재하청을 주며 공사를 벌이는 경제 블랙홀의 사회에서는 언제 어디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

양평 에너지독립하우스에서 사는 사람들이 태양에너지가 오지 않은 이틀 동안 평상시와 다름없이 매일 샤워를 하고 세탁을 했다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것이고 두 집은 태양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암흑 같은 생활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자연에 맞추어서 자기 생활을 유연하게 조정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은 그런 고생을 하지 않고 위기에서 벗어났다. 경제라는 블랙홀에 빠져 있으면 이런 조정 능력을 상실한다. 그 결과는 언제 닥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닥치게 되어 있는 암흑 같은 삶이다. 에너지독립하우스에서는 태양이 다시 나올 때까지 버티면 된다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경제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사회에서는 그런 희망도 품기 어렵다.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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