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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생각에 가장 좋은 국가는 어디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란 쉽지 않다. 부를 축적한 나라, 풍광이 아름다운 나라, 첨단기술을 가진 나라, 그 어느 것도 좋은 국가로 부르기에는 마뜩지 않게 느껴진다. 중동의 산유국들은 부자 나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을 좋은 국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갖고 있다 해서 자동적으로 좋은 국가가 되는 건 아니다.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나라지만 좋은 국가로 부르는 데는 주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국가 브랜드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사이먼 앤홀트는 ‘좋은 국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그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기후변화, 인권, 테러리즘 등 세계화가 수반하는 엄청난 도전들에 대한 국가들의 반응속도는 왜 이토록 느릴까. 그는 70억명이 살고 있는 세계의 조직 방식, 다시 말해 국가와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에서 그 답을 찾아냈다. 개별 국가를 지배하는 법률과 정치인들의 시야가 영토라는 협소한 울타리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국가는 마치 외딴섬이라도 되는 것처럼 국경 바깥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국내 문제에 매몰되어 지구적인 문제의 해결에 무관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앤홀트는, 첫째 그들을 뽑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것을 원하고, 둘째 정치인들의 상당수가 공감 능력이 부족한 문화적 정신질환자들이며, 셋째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가 양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 바보 같은 생각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따라서 정치인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은 국내 문제를 국제적인 시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좋은 국가’의 기준은 한 나라가 자국민이 아닌 나머지 인류에게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이다. 이 기준은 수억개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세계 시민들이 어떤 국가에 호감을 가지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추적한 결과에 근거한다. 사람들은 부자 나라라고 해서, 군사력이 강해서, 첨단기술을 갖췄다 해서 동경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좋은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나라가 실제로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세상을 안전하고 풍요로우며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테이블마운틴_경향DB


앤홀트가 만든 ‘좋은 국가 지수’는 과학기술, 문화, 국제평화와 안보, 국제질서, 기후변화와 환경, 번영과 평등, 건강과 웰빙이라는 7개의 항목별로 각각 5개의 지표를 적용하고 있다. 최근의 평가 결과를 보면 한국은 47위이다. 과학기술과 문화는 30위권에 들었지만, 국제평화와 안보는 119위, 기후변화와 환경은 71위로 성적이 아주 나쁜 편에 속한다. 케냐, 과테말라, 가나 등이 한국보다 좋은 국가로 평가되었다는 사실은 좋은 국가란 돈이 아니라 품격의 문제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 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확정안 발표를 들으며 새삼 국가의 품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기후불량국가라는 오명이 두려워서만은 아니다. ‘법의 지배’를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정부가 거리낌없이 법을 어기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자각 때문도 아니다. 국가의 품격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한 것은 정부의 정직하지 못한 태도였다. 대통령이 했던 말을 ‘헛소리’로 만드는 안을 확정하면서 국무총리는 “의욕적인 감축목표 제출로 정부의 저탄소 경제 지향을 국제사회에 천명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한다. 이건 한국에서나 가능한 코미디다.

기후변화라는 위기 앞에서 모든 국가는 자국의 영토, 국민, 산업만을 고려하는 편협한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모두가 ‘좋은 국가’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오는 물건, 사람들, 문화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세계 시민들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안병옥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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