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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편집국에서]TK의 선택

opinionX 2017. 4. 17. 10:17

- 4월 1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대선의 계절이 되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누가 될 것 같냐”는 것이다. 조금 점잖은 양반들은 “시대정신은 뭔가”라고 묻곤 한다. 2015년엔 ‘통합’을, 올 초엔 지도자의 ‘이해하는 능력’을 이야기했다. 모두 갈라지고 지친 우리 정치와 민심의 모습 때문이었다.

정치는 책임이고 성찰이다. 책임 없는 권력과 정치는 국가 3요소인 국토를 사려 깊게 다루지도, 국민을 두려워할 일도 없다. 책임의 의무는 정치인만이 아니다. 어쩌면 그들을 이룬 표심들이 더욱 그 자장 속에 있다. 국정농단이 만든 전례 없는 대선을 생각하면 지금 시대정신은 ‘책임’이 아닐까 싶다.

지금 책임의 저울대 위에 선 표심은 소위 ‘TK(대구·경북)’와 보수라는 이름으로 결집하고 한 시절을 호령한 이들이다. “경상도 대통령”부터 “우리가 남이가”까지, 한국사회 권력욕망의 상징처럼 군림하고 권력 창출의 수원(水源)으로 자부해온 그들이다.

탄핵의 겨울을 지나 맞는 ‘대선의 봄’, 그들은 답답한 선택지를 마주하고 있다. 그들 지역 사람도, 그들 생각을 대변한다 여겼던 이도 이번엔 제대로 된 선택지에 없다. 선거판 관객이 돼버린 그들로선 ‘멘붕’일 터다.

이제 25일을 남긴 19대 대선까지, 마지막 주인공만큼이냐 중요한 것은 ‘보수’의 운명이다. 정확히 ‘보수 정치’의 운명이다.

“박근혜는 과거가 됐고, 이 선거 과정 자체가 그것을 여과해 내는 시민학습의 장이 될 것이다. 보수도 새로운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홍준표식 호소가 지속성·확장성을 가질 수 없다. 다만 전제가 있다. 문재인·안철수 누가 되든 대실패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통화한 한 보수성향 정치학자의 염려였다. ‘촛불 대선’으로 탄생한 정권이 실패한다면 어렵사리 싹튼 보수의 혁신은 사라지고 말 것이란 우려였다. 다시 태극기 보수 같은 이들이 자리를 찾고, 공존하는 보수·진보의 정치는 요원할 것이란 점에서였다. 새 정권의 성공이 새 보수정치를 낳을 때 반복된 참담한 권력의 몰락이 아닌 ‘진보하는 권력교체’가 가능할 것이란 희망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TK의 선택은 향후 보수정치와 한국사회의 미래를 가르는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지금 ‘딜레마’라고밖엔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수 입장에서 최선이 없는 이번 대선에서 야권의 중심으로 가장 반대편에 있다고 느끼는 ‘문재인 저지’에 몰입할 것이냐, 그래도 보수정치의 싹을 키우는 ‘차선’을 선택할 것이냐다.

대구 민심은 양분돼 있다고 한다. 50대 이상은 ‘홍준표(자유한국당) 아니면, 안철수’, 40대 이하는 ‘유승민(바른정당) 아니면, 안철수’라고 한다. 대구 민심도 “서로 이야기 안 한다. 아예 말이 안 통한다”고 할 정도로 세대별로 갈라져 있지만, 공통분모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고, 그 뒤엔 꼭 “될 것 같으면…”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강성 야당 정권을 막으려 온건한 안 후보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 경우 보수정치의 미래를 저당잡히는 선택이 될 것이다. 세대를 불문하고 선택지 앞에서 서성이는 이유다.

TK와 보수들이 지금 잊고 있는 것은 없는가. 보수정치가 폐허가 된 지금은 보수가 새집을 지을 기회일 수 있다. 이 지역이 보수의 포로로 여겨져온 지난 반세기가 변화하는 역사적 전환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보수정치는 왜 망했는가. 그 본질을 돌아보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혁신의 노력을 외면한다면 보수의 미래는 당분간, 아니 영원히 없을 수 있다.

한국사회는 매일 42명이 목숨을 끊는다. 인구 10만명당 국적포기자 수는 1680명으로 일본의 20배다. 청년들 꿈이 ‘이민’인 나라가 됐다. 세계경제포럼의 2015년 국가별 신뢰지수에서 ‘정책결정 투명성’은 133위로 아프리카 부룬디(131위)보다 못하다. 2007년 34위였음을 감안하면 기록적인 추락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이유가 된 국정농단은 이런 무신뢰·무책임의 집약판이었다. 그 점에서 진짜 보수의 위기, 국가의 위기는 ‘무신뢰의 위기, 무책임의 위기’일 것이다.

성찰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균형감은 없다. 균형감을 잃으면 현실을 정확히 보지 못한다. 지난 10년 ‘묻지마 지지’로 상징되는 이 지역과 보수의 ‘팬덤 정치’가 권력을 비정상으로 만들고 국가를 분열시켰으며, 위기의 문 앞에 서게 했다. 그 혹독한 대가의 한 부분을 지금 보수와 보수정치가 치르고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TK에서 압승한 4·12 재·보궐선거를 보면 암담하다.

어떤 충고도 무용하지만 그럴 생각도 없다. 선택은 그들 몫이다. 성찰을 아예 거절하거나, 덜 미운 ‘차악’을 바랄 수 있다. 그 또한 국민인 그들의 선택이다. 그리고 역사는 그 선택을 기록할 것이다.

김광호 정치·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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