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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처럼 그리운 강이 있었다. 본 적이 없는데도 그리웠다. 모래가 흐르는 강, 내성천이다. 영주댐 공사로 위기에 놓였다는 얘기를 몇 년째 들으면서도 바쁜 일상에 쫓겨 마음만 안타까웠던 그 내성천을, 여름휴가 때 드디어 만났다. 내가 간 곳은 회룡포. 아름답기로 소문난 내성천 중에서도 특히 아름답다고 알려진 곳이다.

넓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신고 있던 샌들을 벗어 모래를 느껴본다. 모래가 강물을 머금고 있다. 백사장에 사람들이 몸을 묻고,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는다. 이곳이 바다가 아니라 강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은 개구리들이다. 감동과 미안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나는 왜 이제야 온 것일까. 내성천을 위로하러 갔는데 내가 위로받고 있었다. 이 강에서 단 며칠이라도 쉴 수 있다면, 상처받은 몸과 마음이 온전히 치유될 것만 같았다.

수년째 내성천 강가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강의 변화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는 지율 스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래톱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이곳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이전의 모습을 알고 있는 나는 차마 눈에 담을 수가 없습니다.” 강의 원형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지금의 강은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은 모습인 것이다. “모래 굵기가 반밖에 안됐었어요. 아주 가늘고 고운 모래였는데 지금은 자갈이 많아져서 맨발로 걷기가 힘들어요. 전에는 강바닥이 평평해서 강을 쉽게 건널 수 있었는데 지금은 강에 골이 생겨서 건너기 위험해졌어요. 풀도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강물이 줄고 육지화되어가고 있어요.” 그나마 훼손이 덜 된 회룡포가 이렇다면, 댐이 세워진 중류 쪽은 어떨까. 내성천의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 사진을 비교해 보면, 그간의 변화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굵은 자갈이 나뒹굴고 풀들이 점령해버린 내성천 상류를 보며 이곳이 불과 얼마 전까지 곱디고운 금모래가 반짝이던 강이었음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백사장이었다가 굵은 모래와 자갈이 많아진 영주시 무섬마을의 내성천변 (출처 : 경향DB)


내성천을 이 지경으로 망쳐 놓은 것은 영주댐이다. 낙동강 물이 오염됐으니, 내성천을 댐으로 관리해 낙동강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겠다는 것이 댐 건설 목적이다. 그러나 낙동강이 녹차라떼가 되고 큰빛이끼벌레가 창궐하게 된 지금 해야 할 일은, 멀쩡한 내성천의 숨통을 막는 영주댐 완공이 아니라, 담합과 비리, 대국민 사기극으로 드러난 4대강 사업을 평가하고 낙동강을 재자연화하는 일이다. 한국수자원공사의 목표대로 내년 3월 이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의 수문이 닫히면, 영주시 이산면과 평은면이 물에 잠기게 된다. 400년 된 금강마을과 국가지정 문화재 고택을 비롯하여 무려 511가구나 되는 집들이 수몰되고, 대대손손 농사짓고 살아왔던 주민들이 고향에서 쫓겨나고, 멸종위기 1급 물고기 흰수마자와 천연기념물 먹황새의 얼마 안 남은 서식지가 사라지게 된다. 이것도 모자라, 내성천에서는 대규모 하천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인공제방을 만들고,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생태하천’을 만들겠다고 한다. 4대강 사업의 판박이다.

내성천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녹색연합은 8월23일과 24일, 내성천에서 생물다양성조사를 한다고 한다. 삵, 수달, 솔부엉이, 흰수마자 등 내성천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들을 시민들이 직접 조사하고 기록하여 ‘생물다양성 온라인 지도’를 만드는 활동이다. 지율 스님은 내성천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강을 모니터링하고 ‘내성천 한 평 사기’ 운동을 펼치는 한편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 2편인 <물 위에 쓴 편지>를 곧 인터넷에 공개, 배포할 예정이다. 더 늦기 전에 내성천으로 가자. 그곳엔 큰 상처를 입은 몸으로도 사람들을 안아주고 위로하는 어머니 강이 있다. 눈물이 강이 되어 흐르면, 강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황윤 | 다큐멘터리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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