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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은 435기다. 수명연장을 고려하더라도 2030년대 120기, 2040년대 210기가 영구정지된다고 한다. 국내 원전도 가동 중인 23기 가운데 10기가 2020년대면 설계수명을 다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 폐로시장 규모가 2030년 500조원, 2050년 10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원전 건설은 정체해 있는 반면 폐로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향신문이 6회에 걸쳐 보도한 ‘눈앞에 닥친 원전 폐로’ 기사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무엇보다 원전 정책과 산업, 연구 등을 담당하는 원자력계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다.

원전은 30~50년 동안 전기를 얻는 편익을 위해 수천대에 걸쳐 후손에게 짐을 지우는 시설이다. 가동이 끝나고 원자로를 해체(폐로)하는 데만 짧게는 15년, 길게는 60년 걸린다. 사용후핵연료와 같은 고준위폐기물은 10만년 동안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고준위폐기물 영구처분은 지금 세대가 아직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기술이다. 우리는 중저준위방폐장은 짓고 있지만 사용후핵연료 문제와 관련해서는 겨우 공론화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설계수명이 다한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를 폐로하지 않고 수명연장해 가동 중이거나 가동하려 하고 있다. 노후 원전을 수명연장하기보다 폐쇄하는 것이 국제적 추세임에도 국내 원전 정책과 업계 현실은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월성 원전 단지가 보이는 경북 경주시의 바닷가에 지난 5일 발전소 출입을 통제하는 팻말이 꽂혀 있다. (출처 : 경향DB)


국내 원자력계가 폐로 시대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폐로는 원전을 짓기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시간과 비용, 기술, 사회적 합의 과정 등 모든 면에서 결코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소형 원자로를 해체한 것 말고는 경험도 없다. 안전한 폐로를 위한 법도, 폐로를 담당할 기관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정책이나 연구·개발(R&D) 등이 원전 확대에 집중되다 보니 폐로나 폐기물 처리 등과 관련한 부분은 소홀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는 국내 폐로시장을 송두리째 외국 기업에 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어제 폐로 기술 개발과 정책 마련을 위한 부처 간 실무협의를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2012년 11월 총리실 주재로 원전 해체 문제를 논의한 지 21개월 만이다. 2021년까지 폐로 관련 기술 자립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정부 로드맵에 따라 연구·개발 노력을 기울여온 원자력계의 발걸음도 최근 빨라진 듯하다. 정부와 원자력계는 폐로 시대 준비에 만전을 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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