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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회항’ 사건으로 재판에 회부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법은 항공보안법 위반 등 5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조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여모 대한항공 상무에게는 징역 8월, 김모 국토교통부 조사관에겐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이번 사건의 성격을 “돈과 지위로 인간의 자존감을 짓밟고, 조직이 한 개인을 희생시키려 한 사건”으로 정의했다. 이로써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발생한 사건은 두 달여 만에 사실상 마무리됐다.

조씨는 객실 승무원의 마카다미아넛 서비스를 문제 삼아 항공기를 회항시켰는데, 이러한 행위가 ‘항로 변경’에 해당하는지가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항로 변경은 항공기가 통행하는 공로(空路)뿐 아니라 이륙 전 지상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합당하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항로에 대한 명백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지상로까지 항로에 포함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는 변호인 주장을 부인한 것이다. 항공기 항로변경죄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은 국내 최초라고 한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린 12일 서울 서부지법에서 한 외신기자가 1심 선고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법원은 조 전 부사장에게 징역 1년 실형을 선고했다. (출처 : 경향DB)


조씨에 대한 1차적 단죄는 끝났다. 남은 과제는 교훈을 얻는 일이다. 조씨의 행태를 개인적 일탈이나 인성 문제로 치부해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때만 이번 사건은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우선 재벌 일가의 세습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한항공의 위기 대응 과정은 경영권 세습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총수 일가 중 한 명이라도 위기에 빠지면 거대기업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는 것, 총수 일가가 아닌 임원은 견제와 감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시민적 상식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 총수의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맡는 일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한발 더 나아가 ‘갑질’ 문제도 근본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지난 몇 해 동안 불공정한 갑을관계에 대한 비판론이 비등했음에도 변한 게 없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특정 기업이나 개인을 겨냥해 분노를 터뜨리고 그들의 행태를 조롱하는 데서 그쳤기 때문이다. 이제는 천민권력 현상의 뿌리를 들여다보고 이를 법적·제도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때다. 시민 각자가 일상생활에서 저지르는 갑질도 자성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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