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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롭게 시민의 힘, 참여의 힘을 느낀다. 지난 9월20일 한겨레신문이 ‘최순실’이란 이름을 거명하기 시작하면서, 보다 직접적으로 지난 10월24일 JTBC가 최순실씨의 태블릿 PC에 관한 보도로 국정개입 사건의 전모를 알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나라는 유례없는 격랑에 휩싸여 버렸다. 바로 그 주 주말인 10월29일부터 헌법유린과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히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라며 시민들의 자발적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12월3일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인 232만명이 참여한 6차 집회에 이르기까지 지금 우리 시민들은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다. 광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의 평화롭지만 도도한 분노가 우리 사회를 바꿔나가고 있다.

광장에서 만난 많은 이들은 말한다. 머릿수 하나라도 채우러 나왔다고. 내가 빠져서 숫자가 줄어들면 안된다고. 내가 안 나가도 누군가 나오겠지가 아니라 날씨가 추워서 혹시 집회 참가자 숫자가 줄어들까봐 나라도 참가해야 한다고. 아이들과 청소년은 물론이요, 제주에서 비행기삯을 물어가며 참가한 90세 할머니가 계신가 하면 100세 할머니까지 거리로 나오셨다. 흔히 말하는 ‘무임승차자’는 보이지 않는다.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고 안타깝다는 마음, 자기 몫까지 대신해줘서 고맙다는 인사가 댓글에 넘친다.

광장만이 아니다. 소셜미디어는 이제 시민들의 의사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었다. 가림이나 숨김이 있기 어렵다. 정보가 끊임없이 유통되고 공유되면서, 정부가 알리고 싶지 않아 여백으로 남겨졌던 부분들을 채워나가는 퍼즐 맞추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시민 4명이 시간과 재능을 기부해서 만든 대통령 탄핵 국민 청원 사이트 ‘박근핵닷컴’(parkguenhack.com)은 국회의원과 일반 시민을 직접 연결하는, 민심을 바로 전달하는 핵심 통로가 돼 이미 100만명 가까운 시민들이 참여했다. ‘박근혜 퇴진 모바일 국민투표’도 실시됐고, 카카오톡을 활용해서 국회의원에게 의견을 전하고 요구하기 등 새로운 의사전달과 소통방법이 날개를 달았다. 시민들은 이제 폭력을 동원하지 않으면서 지혜롭고 쾌활하게 분노를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을 가졌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고 국회 표결을 앞둔 지금 상황이 참담하고 수치스럽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에 건강한 시민이 있다는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한 발견은 상당한 위안이자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세계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환경·에너지·기후변화 위기 상황에서 많은 난제를 마주하고 있다. 지난 6일 정부는 신기후체제 출범에 따른 효율적 기후변화 대응을 지향한다면서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과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 기본로드맵을 발표했다. 별다른 사회적 논의 없이 그렇게 계획이 만들어지고 로드맵이 그려졌다.

산업계와 시민사회는 각기 다른 이유로 이런 접근에 비판적이다. 촛불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열의와 사회적 관심이 환경·에너지·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모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사회는 최근 몇 해 동안 활발한 사회적 소통을 거의 잊고 지냈다. 그 어느 나라보다 소통 역량이 크고 사회적 관심과 참여의지가 높은 이 나라에서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대통령의 무능과 부패, 시대착오적 관심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에너지를 소진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 위기 시대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두 달 이상 우리 사회의 모든 의제를 다 삼켜버린 이 부당한 헌법유린과 국정농단 사태를 대통령 탄핵으로 깨끗이 일단락 짓고 새롭게 발견한 건강한 시민들의 참여와 소통을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이뤄가도록 하자.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소통의 장이 마련된다면 시민참여를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로의 문을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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