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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해가 좋아서 지붕 위 태양광발전소에서 전기가 많이 생산되었다. 여기서 생산된 전기는 모두 자가소비하고, 남으면 버린다. 정확하게는 쓰지 않으면 생산되지 않는다. 발전소 가동정지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한국전력에 팔면 버리는 걸 피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 내가 생산한 깨끗한 전기를 원자력 전기와 섞어서 아무 표시도 없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한국전력을 경유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발전소를 놀리는 것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전기독점 권력을 쥔 한국전력을 통하지 않으면서 해가 좋을 때 발전소를 계속 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생산된 전기를 농산물처럼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것이다. 농산물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직거래가 활발하다. 공정한 직거래가 성립하려면 생산자와 소비자 수가 많아야 한다. 거래되는 액수도 크지 않아야 직거래가 성사되기 쉽다. 농산물의 경우 소비자는 물론이고, 소규모 생산자가 많다. 거래액도 크지 않고 수송과 배달 시스템도 발달해 있으니 직거래에 걸림돌은 없다. 소비자는 깨끗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나 값싼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생산자를 찾아서 주문하기만 하면 된다. 공급받은 농산물에는 생산자의 이름이 들어가고 유기농인지 아닌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다른 농산물과 구별된다.

우리 지붕에서 생산된 태양광 전기도 직거래되는 농산물과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깨끗하고, 친환경이고, 거래 액수가 크지 않다. 이 전기를 사용하고 싶다는 소비 희망자도 적지 않다. 게다가 전국에 깔린 전력망이라는 효율적 배달 시스템도 확립되어 있다. 소비자는 생산된 전기의 품질을 사진이나 현장 방문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직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이유는 과도한 규제 때문이다. 정부에서 한국전력에 전국의 전기판매 독점권을 주었기 때문이다. 옆집에도 전기를 팔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 전기시장의 현실이다.

전남 고흥군이 10일 준공한 국내 최대 규모의 태양광발전소 전경. 축구장 80개 크기인 55만8000여㎡ 부지에 태양광을 전력화하는 대형 모듈 4900여장을 설치해 두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에서는 재생가능 전기의 직거래는 규제하면서 생산은 꽤 지원한다. 덕분에 지붕뿐만 아니라 산과 들에도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서고 있다. 여기서 나온 전기는 전력거래소를 거쳐서 한국전력이나 그 자회사에 판매된다. 한국전력에서는 이 전기를 받아 원자력 전기나 화석연료 전기와 섞어서 소비자에게 판다. 소비자는 우리가 음식점에서 먹는 밥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된 쌀로 만든 것인지 모르는 채 먹기만 하듯 이 전기를 소비한다.

정부가 재생가능 전기를 정말 우대하고 지원한다면 직거래를 규제할 이유가 없다. 직거래는 전력시장을 자유화해서 대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허용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전력을 민영화하는 것과도 전혀 상관없다. 소규모 태양광 전기 생산자와 깨끗하고 지속가능한 전기를 사용하겠다는 소비자를 연결하는 것이다. 전력기술자들은 기술상의 어려움이 많다는 이유로 반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 태양광발전소에 계량기를 달아서 전력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전기의 양을 재고, 소비자는 직거래 계약 때 약속한 돈을 생산자에게 지불하면 된다. 한국전력에서는 전달이 가능하도록 전력망을 생산자들에게 개방하고, 적정한 사용료를 받으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

태양광 전기의 직거래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 재생가능 에너지를 우대해야 한다는 정부의 정책에 부합하는 것이다. 게다가 소규모 전기 생산자 겸 판매자들이 지역에서 직거래를 성사시키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농산물 직거래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태양광 전기 직거래, 이런 창조적 경제행위에서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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