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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다음은 있다

opinionX 2016. 10. 19. 11:39

직장을 그만둔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사이에 만난 사람들은 더없이 부러워하면서도 마지막에 이 질문을 던지는 걸 잊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엔 뭐 할 건데?” 그때마다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껏 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해보려고요. 일단 올해는 좀 쉬고요.” 당차게 대답을 하면 질문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라고 시니컬하게 대응하거나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어요?”라며 너스레를 떨고 싶지는 않았다. 나라고 왜 다음이 걱정되지 않겠는가. 아니, 당사자인 나야말로 ‘다음’에 대해 가장 걱정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사람들은 늘 타인의 다음을 궁금해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칠 땐 폭력이 된다. 어떤 사람은 나를 붙잡고 한참 동안 얘기했다. 왜 좋은 직장을 때려치웠느냐, 요즘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걸 모르느냐, 글 쓰는 일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겠느냐, 전혀 다른 일을 해보기엔 조금 늦은 나이가 아니냐, 나한테만 말해봐라 어디 믿는 구석이 있을 것 아니냐…. 지나친 관심은 오지랖을 넘어 오해를 낳는다. 급기야 “결혼할 사람이 부자인가 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제가 결혼을 해요? 누구랑 한대요? 그 사람이 부자래요?”

사생활이 왜 사생활이겠는가. 내가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부분이 사생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나의 다음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이때까지 하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지금은 스스로 자기최면을 걸고 있는 중이다. 경력의 단절보다 무서운 것은 다음에 대해 꿈꿀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내게 새로운 자극을 줄 일을 찾아보고 싶다. 뭐든 ‘일’이 되면 짐이겠지만, 그리고 그 짐은 필경 나를 무겁게 만들겠지만, 나조차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일에 뛰어들고 싶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은 좀 쉬고 싶다. 이제 고작 일주일이 지났을 뿐이다.

“아버지를 생각해봐. 평생을 한 직장에서 일하셨잖아.” 또 다른 사람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는 게 아니다.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삶이 있듯 내게는 내 삶이 있을 뿐이다. 평생을 한 직장에서 일하는 것의 숭고함에 대해서도, 한 가정을 꾸린 후 생계를 위해 모험을 포기하는 것의 거룩함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단지 나는 아직 혼자여서 심신이 상대적으로 가벼울 때 딴생각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무모하게 비칠 수도 있겠지만, 한 시기가 끝나야 비로소 다음이 온다고 믿는 것이다. 안 가본 길에 발을 들이고 싶은 것이다. “네가 뭘 하든 나는 네 편이다.” 정작 아버지는 소식을 듣고 전폭적인 믿음과 응원을 보내주셨다. 기쁜 마음으로 나의 다음을 기다려주시겠다고 했다.

문득 어렸을 때 많이 듣던 질문이 떠오른다.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그때마다 나는 가슴이 설레곤 했다. 탐정이 되고 싶었다가 탁구 선수가 되고 싶었다가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어느 날엔 화가가 되는 상상을, 또 어느 날엔 작가가 되는 상상을 했다. 막연했지만 먼 훗날의 일이어서 가능할 수 있었던 대답이었다. 감히 품을 수 있는 꿈이었다. 아무도 나의 다음에 딴죽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개중 어떤 꿈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다음’이 ‘지금’이 된 것들을 떠올리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다음이 있었기에 더없이 행복한 시절이었다.

생각해보니 살면서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다. 10대에는 공부를 하느라, 20대에는 스펙을 쌓느라, 30대에는 취업을 하고 경력을 쌓느라, 40대에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머릿속으로 다음을 그려보지 못한다. 꿈꾸는 여유가 있을 턱이 없다. 하나의 탑을 쌓는 데 주력하느라 탑 사이사이에 틈을 내고 다른 탑은 어떻게 지어지고 있는지 관찰할 마음을 갖기 힘들다. 지금을 채우기 바빠 선뜻 다음을 가늠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다음에 커서”라는 희망적인 말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견디느라 점점 희미해지고 만다. 자신이 놓쳐버린 ‘다음’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기성세대는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엔 뭐 할 건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아무런 연습도, 훈련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지만 나는 다음이 두렵지 않다. 두렵지만, 그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은 다음이 있다는 믿음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과 살아온 경험을 나는 믿는다. 두 번은 없다. 그러나 다음이 있다. 다음은 있다. 그리고 분명, 다음에만 할 수 있는 것들, 다음이라 비로소 가능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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