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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는 지난 8월 자신의 트위터에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오바마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서 이 글에 대해 “적어도 나는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트럼프에게 일침을 가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작다는 점을 비꼰 동시에, 자신의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말이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박 대통령 역시 대한민국 대통령 중 한 명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트럼프가 박 대통령에게 저 말을 한다면 박 대통령은 오바마처럼 응수할 수 있을까. 그러기 어려울 것 같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미래의 역사교과서에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과 비선 실세의 이름이 나란히 쓰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의혹'과 관련한 대국민사과를 한 뒤 돌아서고 있다. ㅣ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는 역사교과서의 한 대목이라기보다는 어느 추리소설의 후반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최순실’이라는 퍼즐 조각 하나를 집어넣었을 뿐인데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하나의 꾸며진 소설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역사라는 데 있다. 국정농단의 장대한 플롯을 접하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지적 흥분이 아니라 크나큰 허탈감과 수치다.

무엇보다 당혹스러운 것은 대통령이 알고 보니 주체성이 부족한 연약하고 의존적인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은 최태민 일가가 조종하는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처럼 그려지고 있다. 다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지금 국민이 보는 대통령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개인이 아니다. 짜인 각본 안에서 남이 써준 대사를 앵무새처럼 읊는 무기력한 연기자다. 그것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하는 ‘자기대상(selfobject)’ 개념을 잠시 빌려와 보자. 자기대상은 타인이 온전히 자신의 일부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분리된 것도 아닌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자 하인즈 코헛이 고안한 용어다. 자기대상의 발달은 유아기에 시작한다. 유아는 충분히 안정된 자기를 확립하지 못한 상태여서 성숙하기 전까지 정신구조의 일부 기능을 대신 맡아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어려서는 부모가 이 역할을 한다.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맞추고 아이를 적절히 진정시키며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거울처럼 일일이 반영해준다. 이를 통해 아이는 일종의 전능감을 맛보게 된다. 코헛은 이러한 공감 경험이 건강한 자기애의 근간이 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까지고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현실 속에서 단계적으로 적정 수준의 좌절을 경험하면서 유아의 자기대상은 원시적인 형태에서 더 성숙한 형태로 점차 발전해 나간다. 이것이 코헛이 말하는 심리적 성숙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과정을 정상적으로 겪지 못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가령 양육자의 공감이 현저히 부족했거나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었다면 심리적 발달이 저해된다. 또는 수족처럼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는 존재가 계속 곁에 있을 경우에도 유아기적 전능감은 적절히 포기되기 어려울 수 있다. 장기간 고립되어 지내는 것도 자기대상의 원만한 변형과 발전을 어렵게 한다. 부모에서 친구로, 연인에서 배우자로, 스승이나 동료, 때로는 자식에게로 자기대상의 초점이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과정이 결여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최태민과 그의 자녀들, 그중에서도 최순실은 오랜 세월 박 대통령의 자기대상 역할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건강하지 못한 자기대상이었을 공산이 크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모자공생을 연상케 한다. 이런 밀착된 관계에서는 자기 생각과 타인의 생각, 자기 감정과 타인의 감정이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주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에서 언급한 ‘순수한 마음’은 현실의 복잡다단함을 제대로 대면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맞춰주기만을 바라는 유아기적 욕망에 가깝다. 대통령의 생각이 여전히 ‘순수’에 머물러 있다면 이는 개인의 불행이자 시대의 비극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라도 박 대통령이 국가 통치에 앞서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개인으로 다시 태어나 정치의 전면에 설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용기와 결단력, 사고력이 대통령에게 남아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기대는 크지 않다. 심리적 성숙은 그리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성찬 |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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