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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금연을 독려하기 위해 담뱃갑에 혐오스러운 그림을 넣는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정초부터 담뱃값 인상 등 서민증세가 줄줄이 예상되고 있는 마당에 국민들의 심리상태를 더욱 우울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담배로부터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합리적인 ‘금연정책’은 환영이다. 하지만 충격적이고 공포감만 키우는 금연정책이 과연 합리적인지 의구심이 든다.
흉측한 담뱃갑은 담배 한 모금으로 애환을 달래는 서민들에게 상당한 죄의식이나 수치심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정부가 정신적으로 지친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는 못할망정, 국민 건강이라는 명분만을 내세워 ‘불쾌감’이라는 일종의 심리적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이 합당할까?
형사정책적으로 사형제도의 흉악범죄 예방효과 여부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것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용자가 근로자들에게 극단적인 해고의 가능성을 매일 주지시킬 때 노동생산성이 향상되지는 않는 것처럼 담뱃갑 경고 그림이 흡연율 감소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사회심리학자 브렘은 청개구리 심리라는 ‘심리적 반발 이론’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이론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려는 자유를 박탈당하거나 제한될 때 그 자유를 되찾으려는 동기가 유발된다고 설명한다. 즉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성인 흡연율은 1998년 35%대에서 2012년 약 25%로 감소 추세다. 이런 상황이라면 10%대를 맞이할 날도 머지않았다. 상황이 이럴진대 굳이 혐오스러운 경고 그림을 무리하게 도입해 흡연자들의 행동을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극단적인 정책은 브렘의 연구결과에서 보듯이 오히려 ‘반발’을 가져올 수도 있다.
경고 그림 도입에 대한 효과성도 의문이다. 싱가포르, 이란 등에서는 이를 도입한 후 흡연율이 오히려 상승한 사례도 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흡연 감소율을 살펴보면, 2001년 경고 그림을 도입한 캐나다는 마이너스 0.61인 반면, 한국은 마이너스 1.71이다. 경고 그림이 없는 우리나라가 캐나다보다 오히려 흡연율이 더 감소했다는 의미다.
미국 조지타운대 롬바르디 암센터에서 흡연자 740명을 조사·연구한 결과, 흡연의 폐해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사진보다 금연으로 인한 이득을 강조하는 글을 봤을 때 금연 성공확률이 더 높았다. 이미 흡연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부정적 효과를 강조하기보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더욱 효과가 있는 것이다.
흡연 경고 그림이 들어간 담배갑 (출처 : 경향DB)
사람들은 대개 강한 공포감과 불쾌감을 주는 정보는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감정에 금방 내성도 생긴다. 결국 부정적인 정책은 반짝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속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금연정책은 시각적 폭력과 스트레스를 가하는 흉측한 그림을 통한 부정적 방법보다 금연교육과 홍보 등 긍정적인 수단으로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특히 필자 같은 애연가들은 담배의 해악을 모르고 계속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니라 나름 합리적인 판단하에 행동한다는 점에서 담뱃갑 경고 그림 문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김진규 | 법무법인 ‘정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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