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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유한국당이 전당대회를 전후해서 주목을 끌기 위해 연출하는 어떤 장면들은 끔찍하다. 5·18 유공자를 “괴물”이라고 칭하는 것이나 “저딴 게 대통령”에 이은 청년최고위원 후보의 아무 말 대잔치를 보고 있자면, 혐오 선동과 막말 외에는 정치적 자원을 갖지 못한 정치인의 해악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선동 이후, 5·18 유공자에 대한 가짜뉴스 유포와 모독 행위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사회 구성원의 일부를 ‘우리-국민’에서 배제하여 그들을 향해 증오의 말을 쏟아내고, 심지어는 정책 결정에까지 기어이 영향을 미치고야 마는 정치인들은 그저 사회적으로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실제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제임스 길리건의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라는 책은 이 문제를 파헤친다.

정신의학자인 길리건은 폭력에 대해 연구하던 중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 정부가 발간한 살인율·자살률 통계를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그 기간에 미국 사회에서 ‘살인율과 자살률이 함께 오르내리는 경향’을 발견하는데, 놀랍게도 공화당 집권기에는 수치가 늘어났고 민주당 집권기에는 줄어들었다. 이런 경향성을 믿을 수 없었던 그는 이 문제에 파고들기 시작한다. 의사로서 “정치가 아닌 생사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서 말이다. 하지만 답은 결국 정치로 귀결된다.

길리건에 따르면 개인에게 나타나는 폭력 행동의 직접적인 심리적 원인은 수치와 치욕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는 스트레스 요인에 의해 자극받고 악화되는데, 여기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해고’처럼 사회·경제적 지위가 곤두박질치는 경험이다.

그런데 공화당은 국민을 수치와 치욕에 노출시키기 쉬운 정책을 추구해왔다. 공화당 정권하에서 노동자는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취급당했고, 복지정책은 “거지들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개인의 노력을 강조함으로써 경쟁을 부추기고 소수자를 배제함으로써 다수의 결속을 다지는 정치적 수사와 정책은 불평등을 생산했다. 그 과정에서 불평등은 오히려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숭배된다.

반면 민주당은 대체로 경제 불평등을 줄이는 데 집중해왔다. 소득세와 각종 누진세율을 높이고, 실업률과 실업 기간을 줄이고, 가장 취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보편적인 복지를 확대했다. 이렇게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이 줄어들자 사회적 스트레스 요인 역시 줄어들었다.

사회 구성원을 악마화함으로써 폭력을 조장하는 공화당의 경향성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중 교도소 내 교화 프로그램 취소 사건은 매우 인상적이다. 길리건은 교화 프로그램을 연구해 재범 예방에 100% 효과를 보였던 것은 단 하나, 교도소에서 학위를 따는 것이었음을 밝힌다. 그는 범죄율을 줄이는 데 관심이 있는 정부 관리라면 누구라도 이 학위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연구 내용이 한 공화당 주지사에게 전달되었을 때, 결과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튀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도소에 고등교육 무상제공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주지사는 곧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에 갈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이 교도소에 들어와서 공짜로 대학 교육을 받으려고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주지사는 결국 학위 프로그램을 박살내는 데 성공했고, 공화당은 미국 전역의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에게 대학 교재와 학비를 대주었던 연방정부 지원금을 없애버린다.

이는 보수와 그들의 세계관이 실제로 폭력을 줄이는 데 얼마나 무능하고, 심지어는 무관심한지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이 상징하는 정치적 가치다.

마찬가지로 한국당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리 정치가 쇼라고 하더라도, 그 쇼가 무엇을 대변하고 있는가는 사소하지 않다. “정치하는 놈들, 다 그놈이 그놈이지”라는 생각이 들 때에도 정치혐오에 빠져서는 안되는 이유다. 분명히 어떤 정치인은 더 해롭다.

<손희정 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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