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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구에서 유세를 시작했다. 그의 첫 유세 장소는 2·28민주운동 기념탑 광장이다.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28일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최초의 저항운동이었으며 4월혁명의 ‘출발’이었다.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은 대구의 2·28에서 시작하여 마산의 3·15를 거쳐 서울의 4·19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출발이 대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대구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촛불민심의 대변자로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보이려 하는 것 같다.

이런 문재인 후보의 노력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대구는 민주화 이후 한번도 민주당을 밀어주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대통령 선거는 해보나 마나 한 일이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당 후보에 대한 전폭적 지지는 상수였다. 김대중-노무현 당선 때에도 이 지역의 몰표본능은 변함이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오른쪽)가 17일 대구 경북대학교 앞 유세에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시민들의 손을 잡고 있다. 권호욱 기자

이 지역에서 보수정당 지지와 민주당 배제는 크게 보면 세 가지 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감정, 둘째는 정당일체감, 셋째는 이념이다.

처음에는 감정을 동원하면서 민주당을 배제하자고 했다. 근거 없는 편견을 조장함으로써 민주당에 대한 거부 감정을 키우는 것이었다. 이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적 언어, 다른 지역에 대한 막연한 우월감을 동반했다. 이런 감정의 동원은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적으로 유통되지 않았다. 향우회나 동창회와 같은 일차적 관계의 모임에서 내밀하게 통용되는 담론이었다.

이와 같은, 감정에 기초한 정당지지와 배제가 거듭되면서 그것은 급기야 정당일체감으로 발전하였다. 이 단계에서부터 이 지역의 민주당 배제는 조금 더 노골화되었다. 특정 정당과는 동일시하는 의식이 생기고 그와 경쟁하는 다른 정당에 대해서는 적대의식이 흐름을 이루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는 이를 대표하는 담론이다. 민주당에 대한 배제는 조금 더 공개적 영역에서 진행되기 시작했다.

점차 정당일체감은 그 정당이 추구하고 있는 이념을 내면화하는 단계로 진화하였다.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민주당을 배제하는 논리와 가치를 구축한 것이다. 이 담론은 이제 공적 영역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배제하는 논리적 근거와 명분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촛불민심이 우리나라 정치지형을 완전히 흔들어놓은 상황에서도 감정-정당일체감-이념으로 특정 정당을 배제하는 이 지역 정치의 바탕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촛불민심의 충격으로 이 지역을 독점적으로 대표하던 보수정당이 둘로 나누어지고 두 정당의 지지율이 보잘것없게 된 지금에도 이 지역 민심은 민주당으로 가지 않고 있다. 그냥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도록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전략적으로 지지하자는 흐름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어떤 후보가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되지 않도록 다른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 이런 경향이 얼마나 힘을 받을까?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나 그 조짐이 심상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대구 정치 역사에는 그런 경험이 몇 차례 있었다는 것도 지나칠 일이 아니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이승만 후보는 진보당 조봉암 후보와 경쟁하여 70% 대 30% 비율로 승리했으나 대구에서는 그 비율이 거꾸로 나왔다. 이승만이 30%를 받았고 조봉암이 70%를 받았다. 정확한 득표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비율이 그렇다. 대구가 한국의 ‘모스크바’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던 이 선거는 사실 대구 사람들이 조봉암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이승만이 싫어서였다. 당시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대통령 선거일을 앞두고 사망하였는데 그 때문에 이승만을 싫어하는 모든 표가 진보당 조봉암으로 몰린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돌풍이 분 것이나, 1996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련 바람이 몰아친 것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싫어서였던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이를 정면 돌파하려는 것 같다. 그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출발인 2·28민주운동기념탑 광장에서 첫 유세를 함으로써 이 지역의 정체성을 일깨워 지지를 얻으려고 하였다. 이 힘과, 그가 싫어서 안철수 후보로 흐르는 민심의 힘이 교차하면서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를 것 같다. 수십년 만에 대구정치가 상수에서 변수가 되고 있다.

김태일 | 영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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