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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겨울 우리가 이룬 것은 세 번째 민주혁명의 물결이었다. 첫 번째 민주혁명의 물결은 4월혁명이다. 두 번째는 6월항쟁이다. 세 번째는 2017년의 민주혁명이다. 혁명을 추진한 주체에서 보면, 첫 번째는 학생혁명이고, 두 번째는 시민혁명이며, 세 번째는 국민혁명이다. 혁명이 추구한 가치를 보면, 첫 번째는 자유이고, 두 번째는 민주이며, 세 번째는 공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민주혁명은 이렇게 역사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마냥 좋아하고만 있을 수도 없다. 앞선 두 차례의 혁명이 하고자 했던 바를 다 이룬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첫 번째는 미완의 혁명으로, 두 번째는 절반의 혁명으로 끝나버렸다.

첫 번째 혁명은 학생들로부터 민주주의의 깃발을 이어받은 정치인들이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군사쿠데타 세력에 빼앗겨버렸기 때문에 미완의 역사가 되었다. 두 번째 혁명은 시민사회의 민주세력이 군부권위주의 정권에 대해 충분한 힘의 우위를 갖지 못한 교착상황에서 타협으로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이었다고 하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하루 앞둔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현관에서 취재진이 박 전 대통령이 설 포토라인을 만들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세 번째 민주혁명의 물결은 이제 겨우 절반 정도 온 것 같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탄핵소추 ‘피청구인’은 그 결정을 승복하는 것 같지 않고, 박근혜가 잘못한 게 뭐냐라는 소란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대통령선거 후보들은 정치적 부활의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앙시앵 레짐의 반동 음모야 모든 혁명의 역사에 있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탄핵을 결정한 그날 오후부터 나오기 시작한 ‘이제는 통합이다’라는 섣부른 안정론의 저의도 의심스럽다. 국정 혼란을 낳은 문제들을 재빨리, 그리고 명쾌하게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사회통합과 안정을 이루는 지름길일진대, 때 이른 통합론은 세 번째 민주혁명의 본질을 흐리려는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민주진영의 정치인들도 미덥지 못하다. 대통령선거가 조기에 실시되어 그럴 수밖에 없다고는 하나 지금 정치사회는 중구난방이다. 이들이 세 번째 민주혁명을 이어받아 완성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촛불을 켜고 광장에 나왔다가 돌아가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검찰에 출두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파직에 이어 징벌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형사법정에 서게 되면 세 번째 혁명의 물결은 한 번 더 출렁이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민주혁명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혁명이 주저앉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박 전 대통령은 박정희 신화로부터 걸어 나왔으며, 신탁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파직과 징벌이 박정희 신화를 훼손시킬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으로 박정희 신화가 해체되거나 부활의 서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화는 부활을 의례로 자기를 재생산하고, 부활은 신화에 의지하여 자기를 강화한다. 신화는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재 상황이 필요하면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 신화와 부활의 본질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워지고 우리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지면 박정희 신화는 다시 다듬어질 것이다.

그때 박 전 대통령은 부활의 옷을 걸치고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우리는 이런 부활을 수시로 봐 왔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민심이 흉흉할 때, IMF 외환위기가 찾아와서 나라가 몸살을 앓을 때 박정희의 유령이 우리 곁을 배회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신화는 이데올로기보다 더 무섭다. 이데올로기가 가치의 논리적 얼개라면 신화는 맹목적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파직과 징벌에서 더 나아가 박정희 신화를 해체해야 2017년 국민혁명이 완성된다. 그렇게 하자면 박 전 대통령이 박정희 신화로 만들어진 신의 딸이라는 점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 주어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헌법보다 더 높은 초월적 위치에 있다는 가치, 재벌에 특혜를 주고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국가와 개인을 구분하지 않는 시대착오적 불감증은 그가 박정희의 신전에서 뛰놀며 배웠던 ‘믿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어야 한다. 97년체제, 87년체제만큼 61년체제의 문제를 파헤쳐주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서 박정희 신화를 해체해야 한다. 그래서 누구도 부활의 서사를 꿈꾸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오늘 검찰에 출두하는 박 전 대통령을 형사법정에 세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역사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

김태일 | 영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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