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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인가”라는 절망감이 국민을 짓누르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도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던 일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으니 국민들의 충격은 얼마나 크겠는가? 더 심각한 것은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정도면 대통령직의 정상적인 수행은 어렵다. 국가위기 극복을 위한 다양한 주장들이 백가쟁명식으로 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당도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거국내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에서 빠뜨려서는 안 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제대로 답을 찾지 않고 해결방안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쉽다. 이 국면에서도 개헌론에 불을 지피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과도한 권력집중 문제가 있지만, 작금의 비정상적인 상황은 이 문제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현재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춘 개헌안들이 과연 이러한 사태를 막을 수 있는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현재의 문제는 제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었다. 그리고 대통령과 몇몇 측근들만의 탈선이 아니라 우리나라 보수, 특히 그 지도층의 탈선이 초래한 문제다. 이에 대한 명확한 비판과 이들의 자기성찰이 없이 몇몇 인물들의 거취나 때 이른 제도개혁 논의에 매달려서는 비극의 순환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보수 지도층은 박근혜 개인에 대해 제기됐던 많은 문제들에 눈을 감고 대통령 후보로 만들고 대통령에 당선시킨 원죄가 있다. 누가 됐든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만 되면 자신들의 세상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무수행에 심각한 결격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가안보를 전가보도처럼 휘두르지만, 막상 국가에 대한 책임의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출범 이후 전개된 비상식적인 행태들에 눈을 감거나 이를 조장한 것이다. 이들은 대통령이 각종 유체이탈 화법으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해도 용비어천가를 불러대고, “역사를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으로 된다”는 황당한 주장을 내세워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여도 이에 영합해왔다. 멀게는 이미 이명박 정부 출범부터 한국사회를 역주행시키는 작업을 함께해왔다. 현재 위기의 근원도 여기에 있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들은 이제 와서 박근혜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현재의 사태를 개인의 일탈로 몰면서 자신들의 살 길을 만들려는 이 수법은 손자병법의 36계 중 하나인 금선탈각(金蟬脫殼·매미가 허물을 벗는 식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에 해당된다. 이 수법도 효과를 발휘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나갔다.

이들은 얼마 전까지도 세월호 진상조사를 가로막고, 백남기 부검을 고집하며, 명백한 국가폭력으로 시민이 사망한 사태의 본질을 덮으려는 시도 등을 엄호해왔다. 검찰, 국정원 등의 권력기관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반복되고 이에 대해 국민의 비판이 계속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침묵해왔다.

이러한 행태들에 대한 반성이 없이 박근혜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에 대한 반성이 없는 수습책은 미봉책 혹은 또 다른 권력놀음에 불과하다. 여소야대를 만들어준 민의를 제대로 받들지 못한 야권의 책임도 적지 않다. 총선에서 박근혜 정부 심판이라는 민의가 드러났음에도 박근혜 정부의 엽기적인 국정운영을 제대로 추궁하지 못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 협치라는 허상에 매달렸다. 이제 막상 대통령의 정상적 직무수행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사태가 출현하자 오히려 당황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 임기가 1년4개월 남은 상황에서 권력 공백이 출현하는 유례없는 상황은 모두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당황의 근원에 정치적 유불리에 대한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면 큰 문제다. 대선까지 박근혜 정부가 적당한 실정을 반복하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식의 계산들은 머리에서 철저하게 지워야 한다.

야당들은 총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힘을 집중해 현 사태에 책임 있는 자들의 금선탈각 시도가 성공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그것이 하야 요구든, 탄핵 요구든 진실을 가리키고 국민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갈 각오를 해야 한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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