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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9일은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국의 대북정책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햇볕정책으로 지칭되었던 대북 화해협력정책이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0년 전 북의 핵실험은 지금도 대북 대화정책을 반대하는 주장의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햇볕정책이 북의 핵실험을 초래했다는 주장에는 논리적 문제가 있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하는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일은 2005년 9월 미국 부시 행정부가 발표한 대북제재였다. 북한의 1차 핵실험 원인이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정권의 자세가 아니다. 따라서 당시 노무현 정부는 국민에게 사과했고 대북정책 관련자의 책임을 물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뉴욕협의회가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에 북한의 5차 핵실험을 규탄하고 북한 핵의 폐기를 주장하는 광고판을 설치했다. 이 광고는 4주 동안 진행된다. 연합뉴스

햇볕정책이 사실상 중단된 이후에만 북한은 4차례의 핵실험을 진행했으며 당장 또 다른 핵실험을 하더라도 놀랍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박근혜 정부가 자신의 임기 내에서만 핵실험이 두 차례 진행되었고, 북의 핵능력이 고도화되고 있음에도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암울한 상황을 초래한 정책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1차 핵실험 때 정부의 책임을 묻고 정책변화를 요구했던 것과 완전히 상반된 태도이다.

이처럼 무책임한 태도에 국민의 불만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2013년 57.6%에서 45.1%까지 하락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진행된 북의 핵실험까지 과거 정부의 재정지원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궁색하기 이를 데 없는 논리이다. 또한 북한의 붕괴가 임박하고 있거나 이를 촉진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으로 자신의 지금까지의 정책을 정당화하고자 하고 있다. 심지어는 선제공격도 가능하다는 식의 분위기도 조장하고 있다. 야권이 현 정부의 이처럼 무책임하고 위험한 행태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야권은 정부를 그저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한 출발점 중의 하나가 햇볕정책에 대한 재평가이다. 야권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에는 나름 애를 써왔지만 햇볕정책 등 대북 대화정책에 대한 비판에 제대로 대응했다고 보기 어렵다.

북한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과의 대화를 주장한다면, 이는 안보문제에 유약하고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지레 걱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먼저 극복해야 하는 문제는 햇볕정책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시류에 영합하는 태도이다. 햇볕정책은 10년 가까이 북한의 핵능력 강화를 지체시켰다. 북한에 대한 지원이 북의 핵개발을 도왔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규모 등을 고려할 때, 남한과의 경제협력이 없었다면 북이 핵개발을 위한 기술과 자원을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더 명백한 사실은 진지한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북의 핵실험이 중단되었다는 점이다.

핵개발 의지가 있는 것과 실제 핵폭발 실험 등을 통해 핵탄두 소형화와 운반수단 개발이 진전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지난 6년 동안 반복되어온 핵실험이 없었다면 북이 아무리 은폐된 방식의 연구를 진행하더라도 현재의 핵능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 이제 북의 핵무기가 실전에 배치되는 일이 진행될 수 없도록 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고, 그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이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견지해 온 제재 일변도의 정책이 심각한 후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렇다면 햇볕정책과 같은 관여정책으로 현재의 악순환을 방지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많이 확산된 오해와는 달리 햇볕정책이 대북 유화정책은 아니다. 제재보다는 남북간의 활발한 접촉이 북한 사회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통일의 경험도 지속적 교류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북한의 햇볕정책에 대한 초기 반응이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북한과 대화와 교류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따라서 현재 우리는 햇볕정책의 반복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구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는 햇볕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것이지, 햇볕정책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면서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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