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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피치 못할 사정이 겹쳐 최근 산으로 가지를 못했다. 권력의 단물에 취한 이들이 거짓말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꼴에 어안이 벙벙해지기를 여러 날. 일손도 잘 잡히지 않았다. 이번 주 이 코너의 글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 대선 때 이런 말이 있었다. 굳이 바닷물을 다 둘러 마셔야 바다가 짜다는 걸 알겠느냐. 한 방울만 맛보아도 충분하다. 우리 시대의 안목을 생각하며 머리를 빙빙 굴려보지만 쓰디쓴 입맛만 다셔야 했다. 그러다가 밤늦게 <다큐멘터리 3일>을 보게 되었다. 이번 주는 ‘어느 멋진 날’이라는 제목으로 최고의 단풍을 자랑한다는 내장산의 72시간을 다룬 것이었다. 과연 내장산의 단풍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를 넘어선 곳에 있었다. 저런 고운 단풍이 있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허허로움을 의지하는가 싶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저토록 울긋불긋하게 타올라 산하를 물들이는 단풍은 주말이면 전국 곳곳에서 타오르는 촛불과 어금버금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멋진 날에 어울리는 단풍만큼이나 아름다운 건 그래도 사람들이었다. 내장산에서 단풍구경하는 분들은 다들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절에 들러 비는 소원도 그저 가족의 건강과 안녕, 막내의 대학 진학 같은 소소한 것들이었다. 어느 할머니는 백양사 사천왕문을 지나면서 이런 말씀을 남기시기도 했다. 그저 죄짓지 말고 살아야지!
어지러운 심사로 텔레비전 속의 단풍을 보는데 몇 년 전 내장산으로 희귀식물 조사 갔던 생각이 떠올랐다. 목적했던 말나리, 진노랑상사화, 백양꽃, 은꿩의다리를 관찰하고 내려오다가 금선계곡 길섶에서 인상적인 꽃을 만났다. 가늘고 긴 가지마다 세 장의 잎이 어긋나게 달리고 작은 나비 모양의 꽃이 다닥다닥한 야생화. 생긴 모습보다는 그 이름으로 먼저 기억되는 도둑놈의갈고리였다. 선글라스를 꼭 닮은 열매에 잔털이 많아 다른 물체에 잘 들러붙는다 하여 이런 애꿎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최근 ‘식물대통령’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였다. 식물들이 들으면 퍽 섭섭하겠다. 그처럼 도둑놈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도둑놈의갈고리, 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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