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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기업체가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물선이라는 흥미로운 소재 때문이겠지만 많은 언론이 이를 문제의식 없이 보도하면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돈스코이호 발견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경향신문은 2000년 12월 “돈스코이호가 확실한 선체 발견”이라고 보도했다. 2003년 6월3일에는 서울 유명 호텔에서 공식 기자회견까지 열렸다. 고위공직자까지 참석한 이 행사에서 침몰한 돈스코이호 선체 사진은 물론 동영상까지 모두 공개됐고, 이 역시 대부분 언론에 보도됐다. 따라서 ‘113년 만에 돈스코이호 발견’이라는 보도는 명확한 오보다.

러시아 발틱함대의 수송함 돈스코이호의 침몰전 모습

특히 중요한 것은 이번 돈스코이호 발견 소식과 과거 발견 보도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과거 돈스코이호 탐사는 정부(해양수산부)의 공식 매장물 발굴 허가를 통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해양연구원이 한 것이다. 초기 탐사자금을 지원한 동아건설은 당시 세계 굴지의 해양전문 플랜트 기업으로 인정받았다. 동아건설 부도로 자금지원이 끊기자 서울지방법원 파산부가 탐사자금을 계속 지원해 결국 돈스코이호를 찾았던 것이다. 당시 돈스코이호 탐사는 매우 공식적인, 사실상 정부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탐사는 전혀 다른 것 같다. 정부의 매장물 발굴 허가도 없었고, 탐사기관도 중국의 한 민간업체로 알려졌다. 탐사를 주도하는 기업 역시 공인될 정도의 기업이 아니고, 탐사비용을 비트코인을 판매해 마련한다는 보도까지 있다. 이것이 과거 돈스코이호 탐사와 지금 탐사가 다른 점이다. 이것은 요즘 돈스코이호를 투자 관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염두에 둬야 할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신일그룹이 지난 15일 오전 9시 50분께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서 1.3㎞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17일 밝혔다.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의 1급 철갑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Dmitri Donskoii)호는 1905년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일본군 공격을 받고 울릉도 인근에서 침몰했다. 2018.7.17 [신일그룹 제공=연합뉴스]

돈스코이호가 보물선이라는 주장은 한국해양연구원에서 비롯됐다. 한국해양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일본과 러시아 문헌을 연구해 ‘보물선’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일본은 오래전부터 러일전쟁 때 침몰한 이 배를 찾기 위해 상당한 자금을 투입해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은 그 배가 우리 영해에 침몰됐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 측에 공동탐사를 제의하기도 했다.

1999년 우리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라는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보물선 발굴 허가를 남발했고, 한국해양연구원은 국책연구기관 통폐합을 극복하고 해저탐사 기술을 축적하기 위해 탐사를 맡았다. 마침 그해 영화 <타이타닉>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것도 한몫했다. 이 과정에서 부도 난 동아건설은 재기의 발판을 삼으려 시도했고 이를 투기세력이 이용했다.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가 돈스코이호 탐사에 내재된 것이다. 기자가 쓴 책 제목이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쫓는 권력 재벌 탐사가>라고 정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돈스코이호에 실제 150조원어치의 금괴가 실려 있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한국해양연구원의 문헌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동아건설이 70억원을 투자하려 했고, 서울지법 파산부 판사가 이를 면밀하게 검토해 탐사비용을 승인했다는 사실로 유추해 볼 뿐이다.

기자는 돈스코이호를 실제 탐사·인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미 한국해양연구원은 이를 통해 상당한 해저탐사 기술을 축적했을 것이다. 해저탐사 기술은 미래 자원개발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분야다.

물론 여기에는 소유권을 주장하는 러시아와 국제법적인 문제, 유네스코 해저유물보호협약 등의 검토가 뒤따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돈스코이호 탐사를 단순히 보물사냥꾼, 혹은 투기 시각으로 치부하는 것 역시 옳지 못하다. 돈스코이호 이야기는 철저하게 역사(문헌)와, 과학(심해저 탐사)을 바탕으로 한 흥미진진한 스토리(문학)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형의 금괴보다 더 소중할 수 있다.

<원희복 선임기자·<보물선 돈스코이호를 쫓는 권력 재벌 탐사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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