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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화된 폭력과 ‘혐오’의 언어, 피해의 폭로, 극단적인 미러링과 그것을 구실 삼은 반격. 섹스와 젠더가 전쟁터 같다. 하지만 그 싸움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페미니즘의 역사는 바로 그 싸움의 역사다. 싸움이 왜 특정한 노선을 취하는가를 살피면서 파악해야 할 것은 여성들이 무엇을 말하는가이다.

오늘 여성들의 성에 대한 인식은 바뀌었지만, 성적 자기결정권, 임신중단을 비롯한 재생산 자율권, 성소수자 인권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애와 섹스는 그야말로 일상적 권력투쟁의 지뢰밭이다. 여성은 여전히 대상화되고, 이젠 그 대상화에 대해 알게 됐으므로 몸을 어떻게 가꾸고 사용해야 할지를 주체적으로 궁리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다. 신자유주의가 개인주의와 다양성의 가치를 교묘히 포획하여 구축한 경쟁구도에서, 남성 특권의 부분적 축소는 막연한 억울함으로 경험되고 여성을 비롯한 약자를 향한 분노로 표출되기 쉽다. 한편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 카메라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디지털 성범죄가 현실 깊숙이 침투했고, 디지털 음란물 시장에서 여성을 소비하는 폭력은 막대한 이윤을 낳는다.

여전한 물리적 폭력, 제도적 불평등의 문제에 더해져 증폭되는 위협과 무력감에 여성들이 맞대응하고 있다. 지금 여성들은 여성으로 사는 삶의 불평등과 부조리한 위협을 전면적으로 대대적으로 말하는 중이다. 이는 여태껏 전개되어 온 페미니즘 운동의 한계를 돌아보는 동시에, 강남역 10번출구 사건 이후 시위에서처럼 현재의 요구를 표현하고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성에 기인한다. ‘남성혐오’ 사이트로 알려진 메갈리아, 워마드는 여성들이 이 시대의 여성혐오 문화에 대응하면서 인터넷상에서 만들어냈던 공간이다. 성피해자로 신분을 노출하는 고통을 불사하고 성피해 사실을 폭로한 일련의 여성들은 미투 운동을 촉발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최근의 혜화역 시위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디지털 성범죄 근절 촉구라는 단일 의제 중심으로 조직된 운동이다. 이 현상들은 물론 각각 매우 다르지만, 구조화된 불평등과 성폭력에 대항하는 젊은 여성들의 절실한 자구 노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젠더 권력의 불균형이 드러나는 양상의 변이에 따라 그 반작용 및 투쟁 방식도 변한다. 합리적 소통을 통한 제도개선과 동등한 위상의 추구가 여성운동의 주요 방식이었으나, 그것은 남성중심적 담론의 내면화, 남성들과의 일상적 타협을 상당부분 활용해야 하는 거기도 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나아가는 일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고 인내심이 바닥나고 두려움이 커진다면, 온건한 합리성의 테두리 안에 머무르기가 어려워진다.

앞서 언급한 현상들은 우리 사회의 젠더관계를 거시적으로 봐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극단적 과격성을 여성들 스스로 비판하고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나, ‘생물학적 여성만’을 투쟁 주체로 명시하고 ‘혐오’ 표현이 구호로 등장한 혜화역 시위가 진정 페미니즘인지를 묻는 질문은 그래서 핵심을 빗나간다.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여성을 제외한 다른 사회적 약자들을 조롱하고 폄하하는 입장은 정치적, 윤리적 정당성을 포기하는 셈이다. 하지만 워마드로 불리는 입장이 애당초 어떤 보편성을 전제하는 운동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워마드식 입장이 명백히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비판 자체는 거의 무의미하며, 어떻게 비판하느냐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극단적으로 편향되고 공격적인 입장에 대한 비판이, 여성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의 적실함을 가리는 전략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워마드식 극단성만을 선정적으로 부각하는 주류 매체의 비난은, 그것을 여성 일반의 정서인 양 호도하고 여성혐오에 대한 규탄을 비합리적, 비윤리적 정서로 왜곡하여 일반화할 우려가 크다. 오히려 워마드식 혐오 성향은, 여성, 성소수자, 빈곤층, 장애인, 노년층,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멸시가 만연한 우리 문화의 한 단면이라는 차원에서 비판해야 한다. 혜화역 시위의 경우,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배타적 입장은 어쩌면 ‘헬조선’에서 우리가 훈련받는, 각자도생의 외로운 투쟁법이다. 방식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문제들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 근절이 부당한 요구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외로운 투쟁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 비판보다 더 필요한 일이다. 

올해 1~4월의 출산율로 추산한 결과,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1 이하로 떨어진다는 전망이 나왔다. 세계 유일의 0명대 출산율. 우리 사회가 이처럼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지 않은 곳, 행복하지 않은 사회라는 뜻이다. 사랑도 섹스도 결혼도 육아도, 일상이 지뢰밭 속 각자도생인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키울 엄두를 내지 못한대도 놀라울 게 없지 않은가. 지금 여성들의 과격한 외침은 아픈 사회의 비명이다. 여성들이 지금 무엇을 말하는지 귀 기울이고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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