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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취미를 알게 됐다. 일명 ‘돈 되는 취미’. 방법은 간단하다. 식당이나 핫 플레이스를 갈 때마다 영업시간, 테이블 수, 주력 메뉴 객단가, 손님 평균 체류시간, 직원 수, 입지 등을 관찰하면서 그 가게의 매출과 이익을 계산해보는 것이다. 취미를 넘어선 놀이도 있다. 동네 상가 건물에 빈 곳이 생기면 앞으로 어떤 업종이 들어올지 맞혀보는 ‘상가 맞히기 놀이’다. 주변 상권을 분석하고 가게가 몇 평인지, 보증금이나 월세는 얼마인지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생각했던 업종이 입점하면 자신의 부동산 감각을 확인할 수 있고, 틀렸다면 반성하는 기회로 삼고 그 가게가 잘되는지 지켜보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유튜브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실소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넘어가려는데 슬그머니 호기심이 일었다. 한 번 해볼까? 그래서 작정하고 며칠간 매의 눈으로 들르는 가게들을 관찰해 보기로 했다. 공교롭게 구도심의 공간들을 돌아다니며 음악 공연을 볼 수 있는 행사와 시기가 딱 맞았다. 이틀간 다양한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공연들을 신나게 관람했는데, 결과는 대실패. 나 자신이 워낙 그쪽으로 감이 없기도 했지만 계산 자체가 불가능했다. 들렀던 가게들이 소극장, 카페, 재즈클럽, LP카페 같은 문화공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2시간은 기본으로 앉아있는 손님들이 가득한 곳, 평소에 술을 판다고 해도 객단가와 테이블 회전 수를 따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곳들이다. ‘돈 안되는’ 공간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관찰하면서 돌아다닌 결과, ‘돈 되는’ 취미 계발에는 실패했지만 대차대조표로 계산할 수 없는 공간들의 소중함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페스티벌처럼 한 곳에 집중된 대규모 행사가 아니라, 동네의 작은 공간들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보는 기획 그 자체다. 그래서 관객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서 그 동네를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며 군것질하는 즐거움은 옵션, 지도를 들여다보고 계단을 오르고 골목골목 숨어 있는 작은 가게들을 찾아다니는 발품은 필수다. 관객들은 자기 돈을 내고 티켓을 사서 낯선 동네를 돌아다니는 수고를 즐겁게 감수한다. 뮤지션들은 연극 무대에 쓰인 소품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드럼을 두드리고 기타를 친다. 좋아하는 뮤지션을 기다리다가 새로운 뮤지션을 우연히 발견하는 기쁨도 누린다. 새로운 무대에서 내 노래가 누군가에게 가 닿는 그 느낌을 통해 ‘한 번 더 음악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뮤지션의 ‘사운드(sound)’가 무대 위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의 경험으로 일상을 충전한 관객들과 만나면서 ‘바운드(bound)’한다.
이처럼 공간에는 역사가 남고, 뮤지션과 관객들에게 기억이 남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누군가 공들여 가꾸고 매만지던 공간, 구석구석 쓸고 닦고 만지면서 생긴 생활의 결이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가게만이 가진 세월의 무게든, 새로 문을 연 가게의 반짝반짝한 설렘이든 애정이 담긴 일상의 공간과 만날 때 비로소 음악은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다. 아무 데나 버려져 있던 공간에 큰 무대 세우고 의자 깔아서 사람들을 앉혀 놓는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실 ‘돈 되는’ 걸로 따지고 들자면야 이런 행사는 애초에 계산기를 두드릴 견적도 나오지 않는다. ‘돈 되는’ 취미를 가진 이들이 보기에 이런 공간들은 운영 자체가 말이 안되는 곳이니까. ‘돈 주는’ 높은 분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수많은 관객이 한군데에 모여 장관을 연출하는, 소위 ‘그림이 되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인사할 큰 무대도 없으니 말이다. 취미마저 ‘돈 되는’ 세상에서 ‘돈 안되는’ 일을 하려니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실적도 안되고 돈도 안되는 게 사실이지만 이런 ‘돈 안되는’ 일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새로운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건 아닐까? 나는 ‘돈 되는 취미’ 갖기에 실패했지만, 이런 ‘돈 안되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의 시도만은 실패하지 않았으면, ‘돈 안된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 안되는’ 즐거움에도 “슈퍼울트라그뤠잇!”을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그날까지 ‘돈 안되는’ 음악여행이 계속되길 응원한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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