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4년, 노동운동가 박점규는 주간경향의 ‘노동여지도’라는 연재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울산의 노동자는 40~50평 아파트에 살며 쏘나타와 그랜저를 타고 다니는 ‘직영계급’과 20평 임대주택에서 엑센트와 아반떼를 타는 ‘하청계급’, 이 공장 저 공장을 떠돌아다니는 ‘알바계급’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후, 울산을 비롯한 동남권 공업벨트는 조선업의 위기로 인해 아래로부터 크게 부침을 당하는 중이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투자실패, 부실경영, 분식회계 등에 대한 뉴스들로부터 잠시 숨을 돌린 후, 박점규가 “직영계급”으로 명명한 ‘정규직 노동자-중산층 모델’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먼저 1970년대 중반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당시 서울로의 순유입 인구수는 1975년에 정점을 찍었다. 당시 경제호황은 인구이동의 동력원 구실을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시점을 기준으로 서울로 유입되던 영남 인구가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신 이후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따라 새로 건설된 동남권의 공업벨트가 서울을 대신해 이 인구를 흡수한 결과였다.
당시 이 지역에 유입된 인구 상당수는 국가 주도의 직업훈련프로그램을 거친 예비 노동자였다. 박정희 정권은 1967년 이후 ‘직업훈련법’에 의거, 기술자격증 제도와 직업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인력관리의 일환으로 대체복무 제도를 마련했다. 사회학자 문승숙이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에서 지적한 대로, 중등교육까지 마친 하층계급의 젊은이들에게 정부의 프로그램에 참여해 국가의 지원 아래 제조업 사업장에 취업하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사회진출 전략이었다.
누군가는 베이비붐 세대를 대상으로 행해진 이런 “숙련노동의 남성화” 과정을 두고 ‘난민촌에서 병영화된 공장으로의 이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영남권에 집중된 국지적 현상이기도 했다. 중화학공업 육성책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호남권과 충청권 출신들은 여기에서 비켜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들 중 하층 계급 출신은 서울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를 찾기 힘들었고, 이주 후에는 주로 일용직 혹은 비공식 부문의 산업예비군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 중 하나는 동남권 공업벨트의 대표주자, 울산의 출생지별 인구분포일 것이다. 2000년 기준, 울산 인구 중 울산 출신은 46.1%, 부산·경남 출신은 19.1%, 대구·경북 출생자는 18.3%로, 영남 출신이 전체의 83.5%였다. 반면 광주·호남 출신은 4.3%, 대전·충청 출신은 3.9%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남권의 이주는 계층에 따라 상이한 목적지로 분화되었다고 말이다. 즉 영남의 구중산층은 관료진출이나 사업확장을 위해, 엘리트들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서울로 이주한 반면, 농촌 퇴출 인구의 상당수는 동남권 공업벨트로 이동했던 것이다.
이 지역 특유의 중산층 모델이 등장한 것은 바로 후자의 경로를 통해서였다. 70년대 중반, 이 경로의 초입에 진입했던 베이비붐 세대들은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을 경유해 ‘남성 노동자’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획득했고, 90년대에는 임금인상과 사내 복지제도 도입에 힘입어 ‘정규직 노동자-중산층 가족’이라는 새로운 중산층 모델을 고안하기에 이르렀다.
1987년이라는 시점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수도권의 1940·50년대생 도시 중산층이 주도적으로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던 시점에, 동남권 공업벨트의 베이비붐 세대 노동자들은 결혼-출산·육아-집 장만과 관련된 생애주기상의 과업수행을 앞둔 상태에서 저임금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대규모 파업투쟁에 돌입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두 유형의 중산층 모델은 가파른 내리막길 앞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몰락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도 사라진 시대, 각자도생의 열망만이 아우성치는 시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지난 칼럼===== > 별별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팩에 든 고기와 주먹고기’ 사이 (0) | 2016.07.25 |
---|---|
고소가 아니라 토론이다 (0) | 2016.07.18 |
[별별시선]‘서프러제트’와 ‘비밀은 없다’ (0) | 2016.07.05 |
“루쉰 선생님이 그러셨어” (0) | 2016.06.20 |
내려놓고, 편하게 (0) | 2016.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