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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끌어올리기 캠페인이 한창이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급기야 교육부 내 미혼 남녀들의 숫자 현황까지 체크해가며 결혼 독려에 나섰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에 비판적인 이들은 팍팍한 경제 현실을 지적하며 출산율이 떨어지는 주된 원인은 경제적 압박과 불평등에 있으니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선진국’에 근접해가면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피할 길이 없으니 해외로부터의 노동력 수입 등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찜찜한 의문이 남는다. 출산율을 직접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아이를 낳고자 하는가이며, 이는 그야말로 그들의 인생관이라는 크고도 복합적인 틀에서 결정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렇게 알량한 몇 가지 사회 경제적 현상들의 함수로 바로 결정되는 문제일까? ‘선진국 사회’로 변모한다든가 경제적 압박과 불평등이 심해진다든가 하면 바로 그것이 출산율 등락으로 이어진다는 말인가? 나름대로의 생각과 철학을 갖고 스스로 인생을 짜나가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너무 실험실 모르모트처럼 보는 생각이 아닐까?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출산율 저하가 ‘선진국’이나 부자나라, 가난한 나라 할 것 없이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한때 출산율이 높았지만 아직 ‘선진국’으로 진입했다고는 볼 수 없는 이집트, 인도, 인도네시아 모두 여성 1명당 출산율은 1950년에서 2009년 정도까지 절반으로 감소하였다. 여전히 높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 또한 마찬가지여서 2025년쯤이면 현재 출산율의 절반 가까이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리하여 세계의 전체 인구는 그 증가율이 점차 둔화되어 2050년을 정점으로 찍고 이후 감소 추세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요컨대, 출산율 감소는 전 지구적인 추세이며, 따라서 그 원인을 몇 가지 사회 경제적 요인으로만 환원하여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장래 출생아 수 추계&생산가능인구&인구증가율&저복지·저출산율의 악순환 구조 (출처 : 경향DB)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유엔 보고서에서 제시되는 설명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좀 엉뚱하지만 이는 텔레비전과 인터넷 등의 매체 확산과 관련이 크다고 한다. 매체의 확산과 함께 ‘미드’ 등이 전 세계로 퍼지게 되면, 대여섯 명의 아기를 업고 이고 밥을 짓는 인도와 아프리카 여성들이 한 두 명의 아이를 키우며 집과 바깥을 넘나드는 서구 여성들의 생활 방식을 매일매일 접하게 된다. 여기에서 여성으로서의 ‘좋은 삶’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전통적인 이미지와 가치관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녀들이 삶을 영위하는 현실의 조건은 여전히 미국 LA나 뉴욕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렇게 그녀들의 마음속에 각인된 ‘좋은 삶’의 모습은 그러한 객관적 조건과 무관하게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시대를 살았던 할머니 세대는 10명씩 낳아 기르는 일이 허다했다. 그네들은 일생을 출산과 육아에 바치신 셈이며, 그것이 여성의 ‘좋은 삶’이라고 여기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은 끝나버린)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를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 세대는 보통 3명을 낳아 기르는 일이 많았다. 복지도 육아 시설도 마땅치 않던 그 시절에 3명을 혼자 기르는 일도 엄청난 일이었을 터. 할머니 세대만큼은 아니어도 어머니 세대 또한 출산과 육아를 자신의 ‘좋은 삶’의 내용으로 여기셨을 것이다. 탈산업화의 한국 자본주의에서 생존하느라 버둥거리고 있는 우리 세대의 여성들은 2명 혹은 1명을 낳아 기르고 있다. 물질적 조건과 여가 시간을 생각하면 분명히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보다 월등하지만, 그네들의 ‘좋은 삶’에서 출산과 육아의 의미 또한 분명히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와 다르다.

어설픈 출산율 캠페인은 물론이고, 몇 가지 보조금 및 수당이나 세금 감면 같은 것들만으로는 출산율 감소라는 지구적 추세를 역전시킬 수 없다. 탈산업사회라는 조건에서 많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정말로 여성의 (나아가 모두의) ‘좋은 삶’이 되는 새로운 생활 방식의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전체적인 사회경제 지표의 개선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는 문화적 개혁도 포함하는 과제이며, 또한 이를 현실로 뒷받침할 여러 제도의 안착까지 포함하는 과제이다. 요컨대 일과 가족과 여성과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는 새로운 ‘좋은 삶’을 상상하고 실현해 가는 큰 규모의 과제인 것이다. 고도의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출산율 저하 문제를 성공적으로 풀어나간 프랑스나 스웨덴의 예는 이런 일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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