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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지금이 몇 시인 줄 알아?”

“아… 진짜… 알아요. 알아.”

“쾅!(진도 2를 방불케 하는 강한 진동을 동반하며 강하게 문을 닫는 소리가 남)”

“쾅!(또 한번의 여진을 동반하며 화장실 들어가는 소리)”

(20분 동안 샤워기에서 씻는 행동은 전혀 없는 듯 물 쏟아지는 소리만 지속됨.)

“(화장실 문을 격하게 두드리며) 물만 틀어놓고 자고 있는 거지! 이제 그만 나와.”


2년 전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해 등교전쟁을 치르던 몇 달간의 끔찍했던 상황이다. 주말에 친구들과 축구할 때는 새벽 6시에 일어나는 것을 보면 학교가 재미없으니까 시간 맞춰 등교하기 싫었으리라. 어쨌든 모자간에 최소한의 교양을 벗어던진 채 날선 명령과 거친 반응을 주고받았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바야흐로 입학의 계절이다. 올해 나는 고3, 고1 두 명의 고등학생의 엄마가 되었다. “고3 입시생의 학부모로서 얼마나 긴장될까?” 걱정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미성년자 보호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에서 벗어나 조만간 ‘자유부인’이 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설레고 있다. 2년 전 요맘때 치른 등교전쟁에서도 “아이를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순간 나의 마음과 가족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근대사회는 엄격한 시간규범을 특징으로 하고 있고, 학교는 시간규범에 따른 규율권력으로 인간을 훈육하는 사회다. 학생들은 계속적으로 시계를 쳐다보며 분 단위로 쪼개진 특정한 시간 안에 자신의 동작을 조절·관리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한 학교는 어머니들의 노동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식민화하며 운영되고 있다. 여성들은 막 입학한 자녀들을 등교시간에 맞추는 과업 수행 속에서 심각한 시간갈등과 시간전쟁을 경험하기도 한다.


일하는 어머니들에게 시간을 둘러싼 갈등이 가장 심각하게 인식되는 시기는 초등학교 자녀를 입학시킨 요맘때가 아닐까? 일하는 엄마들의 직장 시간표와 학교 시간표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보통 오후 1시 정도면 학교 일정이 끝나기 때문에 일하는 엄마들에게 방과 후 발생할 수 있는 돌봄의 공백은 “일이냐, 아이냐”를 두고 갈등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사회와 정부는 아무런 대책 없이 학생들을 오후 1시에 하교시키고 있고, 이러한 현실은 모성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일하는 어머니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우리나라는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 대비 고용률이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하는 어머니들로 하여금 일터를 떠나게 만들고 어머니들의 시간갈등을 부추기는 학교 현실은 하루속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출근시간과 아이의 등교시간이 일치하지 않는 집에는 도우미가 방문해서 아이의 등교를 도와주고 방과 후 돌봄·보육이 강화되는 것. 안전하고 신바람 나는 학교를 만들어 학생이 있는 집에서 오전 7시를 넘은 시간에 가끔 들을 수 있는 괴성이 사라질 수 있기를. 하루속히 상상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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