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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은 | 국회 입법조사관

 

“성공한 남성의 뒤에는 아내가 있고, 성공한 여성의 뒤에는 나이든 여성 혹은 이주여성이 있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올해 하반기부터 손자녀를 기르는 할머니들에게 월 40만원씩 현금을 주는 ‘손주 돌보미 사업’ 실시를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각계의 반응이 뜨겁다. 


여성가족부의 발표 내용을 분석하는 것은 뒤로 하고, 실제로 맞벌이 가족에서 어린 자녀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짚어낸 것으로 보인다. 


무한경쟁사회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 바치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상을 관리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에서 면제되어야 직장에서의 헌신이 가능한 과로사회에서 성공한 남성들은 아내의 내조에 기대고 있고, 성공한 여성은 할머니 혹은 이주여성들의 돌봄노동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라. 일하는 딸이나 혹은 며느리를 대신하여 손주들을 돌봐주는 할머니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소위 할머니들도 ‘괜찮은 직업’을 가진, 혹은 ‘괜찮은 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 딸의 자녀를 돌봐주고 있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로 임금과 처우가 불안정한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손자녀를 돌봐주는 할머니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한민국의 가족 안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노인복지와 아동복지가 가족 안에서 실현되고 있는 현실이다. 가족은 계산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만으로 구성될 것 같지만 가족 안에서만큼 손익계산을 치밀하게 하는 관계도 없다. 별다른 노후대비책 없이 자녀를 위하여 헌신하였던 노인들은 ‘괜찮은 직업’을 가진 자식의 뒷바라지를 해주고 받는 용돈으로 생활해가는 경우가 많다. 치아에 문제가 생기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손주를 맡긴 자식들이 병원비를 지원해 주게 된다. 자녀들은 이 험난한 세상에서 믿을 곳은 가족뿐이라는 가족주의에 기반을 둬 어린아이의 양육을 부모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민주적인 열린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가 가족이기주의이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영아보육,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의 부재, 엄마의 돌봄을 전제로 운영되는 학교, 안전하지 않은 지역사회, 늙어서 아파도 돈이 없으면 치료할 도리가 없는 사회와 결합한 가족이기주의는 국가를 향한 아동복지와 노인복지의 강화 요구를 소극적으로 하도록 만든다. 


직장인들은 흔히 책상 위에 가족사진을 올려 놓는다. 가족주의에 입각한 일종의 가족애 전시행위이다.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영아보육시설이 곳곳에 생겨나고, 어르신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고 운영되는 노인복지관과 야외에서 노후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 사회가 되어야 직장인들이 책상 위에 올려 놓는 사진이 가족사진에서 동료들과 친구들의 사진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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