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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끌고 밖으로 나가다.
바라본 하늘은 곱게 푸르다
. 내 눈이 그저그렇고 수중에 똑딱이뿐이었으니 망정이지 혹여 내 눈이 사진가의 눈이고 수중에 제대로 된 사진기가 있었다면 종일 하늘을 바라보고, 종일 하늘을 찍어댔을지도 모른다. 하늘이 자꾸 바라보이도록 좋은 때, 그저 봄에 이어 다시금 미친흥이 절로 나는 계절에 문득 떠올릴 만한 노래가 ‘소년행少年行’이다.

소년행은 한시의 시체詩體인 ‘악부樂府’ 가운데 하나다. 악부는 원래 한나라 무제 때 설치된 국가 기관이다. 주된 업무는 의전에 쓰는 음악을 관리하는 것이었지만 민간의 노래를 채집하고, 채집한 노래를 궁정 음악에 흡수하는 일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악부 덕분에 정리된, 민간의 가요 분위기가 짙은 시체詩體를 아예 ‘악부’라 부르게 되었다. 국가 기관의 업무가 시 갈래 하나를 나은 셈이다.

악부는 엄격한 형식미를 강조하는 정통적인 시
(특히 근체시近體詩)에 견주어 형식, 율격, 내용 들이 자유롭다. 더우기 소년행은 젊은이들이 의리를 목숨보다 귀중히 여기는 모습, 호방한 기개를 뽐내는 모습, 젊은 혈기로 좋은 시절을 거침없이 즐기는 모습 들을 노래하는 시이고 아울러 시 이전의 야성을 간직한 노래다. 무엇보다 소년행의 ‘소년’은 아동의 탄생 이전, 청소년 탄생 이전의 ‘젊은이’이다. 그것도 가장이라거나 지아비라거나 어버이의 의무 따위는 도무지 없는 미혼의 젊은이다. ‘세상아 덤벼라! 내가 간다’ 할 수 있는 젊은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五陵少年金市東 오릉 젊은이들 금시 동쪽을 지나가매
銀鞍白馬度春風 은안장 얹은 백마 타고 봄바람 헤쳐 나간다
洛花踏盡遊何處 져버린 꽃 다 밟으며 어디서 놀려는가
笑入胡姬酒肆中 웃으며, 오랑캐 계집[胡姬] 있는 술집으로 들어간다
-이백, <소년행> 전문(전체 두 수 가운데 둘째 수의 전문)


遺却珊瑚鞭 산호 채찍 잃고 나니
白馬驕不行 백마가 건방져져 나아가지 않는다
章臺折楊柳 장대에서 버드나무를 꺾는
春日路傍情 봄날 길가의 정경
-최국보, <소년행> 전문


이백 <소년행>이 내뿜는, 진 꽃잎 아무렇찮게 즈려 밟고 내닫는 거침없는 기운에 따로이 무슨 군말이 필요할까. 최국보 <소년행>이 단 방으로 포착한 젊음의 연출력에 다시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군말도 설명도 주석도 참고자료도 필요없는 노래가 소년행이다... 하고 보니 골방에서 어휘만 조합해 쓴 <소년행>도 떠오른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少年重然諾 소년은 뱉은 말을 소중히 여기고
結交遊俠人 협객과 벗이 되지.
腰間玉轆轤 허리에는 옥녹로 드리우고,
錦袍雙麒麟 쌍기린 수놓은 차림.
朝辭明光宮 아침에 명광궁을 떠나
馳馬長樂坂 장락궁 언덕길에 말을 달린다.
沽得渭城酒 위성의 술을 사 취하니
花間日꽃 사이로 해는 저물어 간다.
金鞭宿倡家 금채찍 휘둘러 기생집으로 달려가 머물면
行樂爭留連 온갖 쾌락이 다투어 (소년을) 주저앉히지.
誰憐楊子雲 누가 양자운을 가련하다 했나,
閉門草太玄 문을 닫고 태현경을 엮는다.
-허난설헌, <소년행> 전문


은안장, 백마, 져버린 꽃, 오랑캐 계집 따위 말을 딛고 겅중겅중 뛰어 건널 수 이백의 <소년행>이나 산호 채찍, 백마, 버드나무, 봄날 따위 말을 딛고 겅중겅중 뛰어 거널 수 있는 <소년행>하고는 참 다른 허난설헌의 <소년행>이다.
말하자면...
옥으로 된 활대 모양 장식품’(옥녹로)이나 ‘쌍기린 수놓은 옷’이야 ‘은 장식 올린 안장’, ‘산호 장식 올린 채찍’이랑 맞잡이라 하겠지만, ‘오랑캐 계집 있는 술집’이나 ‘길가’에 견주면 ‘명광궁’ ‘장락궁 언덕길’ 같은 말은 지나치게 커서 아무것도 붙들 수 없는 어휘로만 다가온다.

명광궁은 한나라 무제가 세운 궁으로 기록에 따르면 빛나는 옥장식
, 금계단 따위가 대단해서 ‘밤낮으로 환히 빛났다[晝夜光明]’고 한다. 송시와 당시 속에서 자주 나오는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또다른 고유명사인 ‘장락’은 장락궁을 가리키는데, 이 궁은 중국 한나라가 장안에 도읍한 초기에는 조회를 하던 곳이고 한나라 제2대 황제 혜제 이후로는 황제의 모후母后를 모시는 궁이 되었다. 미앙궁과 함께 한제국 수도의 위엄을 대표하던 공간이다.
소년들이 나라의 최고위들만 출입하는 명광궁, 장락궁을 들락거릴 리는 없을 테고, 다만 그만큼 화려한 환락가를 은유하려는 뜻이겠지만 말의 덩치가 지나치게 커서 오히려 성근 시어 탓에 소년행의 분위기는 눈 큰 그물 새로 고기 빠져나가듯 새 나가 버렸다.

위성’ 또한 소년행에서는 눈 큰 그물이 아닐까 싶다. 위성은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의 동쪽에 자리한 곳으로 장안을 마주보는 자리에 있다고 한다. 당나라 때는 당제국 서북쪽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여기서 전송하며 이별의 눈물을 뿌리고 또 이별주를 나눴다고 한다. 아예 이별 노래로 ‘위성곡渭城曲’이라는 악부가 있을 정도다.
허난설헌에게 참고가 됐을 구절은 어떤 것일까.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시구 “위성의 아침 비 가벼운 먼지를 적시니 객사엔 푸르디푸른 버들빛 새로워라”[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당나라 시인 잠삼岑參의 시구 “위성 가에서 말술 마시고 목로집에서 취해 곯아떨어질 만하네”[斗酒渭城邊, 壚頭耐醉眠]는 유명한 구절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말이 너무 무거웠다. 왕유나 잠삼이 드러낸 곡진한 이별의 정은 소년들이 감당할 바가 아니다. 소년행을 빛낼 만한 지명이란 오릉, 금시, 장대(http://theturnofthescrew.khan.kr/13 참조) 따위 아니겠는가.

마무리에 쓴 양웅楊雄[자운子雲은 양웅의 자]<태현경太玄經>도 그렇다. 중국 한나라 때의 문장가인 양웅은 관학화한 유학과는 다른 분위기의 문장과 사상을 지녔던 인물이다. <태현경>은 육조시대 도가의 연원으로 평가받는 저서이다. 맥락으로 보면 젊은 날의 화려함과 문 닫고 도사리고 앉은 문장가의 결기가 대조되어 있지만, , 지나쳐라, 선진 사상이나 원시 유학까지 돌아보아야 할 시어란 소년행의 원래 발걸음에 비겨 지나치게 둔중하지 않은가.

곱게 푸른 하늘 덕분에 봄날의 미친흥을 다시 새기매 허난설헌 ‘골방의 이국취향, 골방의 낭만주의’가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http://theturnofthescrew.khan.kr/17 참조). 겪어 본 적도 없는 ‘소년 시대’를 제 방의 서가에서만 호흡하고, 그예 지펴 옛 시집에서 시어를 수집하고, 날빛 빛나는 거리에서가 아니라 규방에서, 부르지도 못하고 다만 내리 쓴 ‘소년행’이라니.

허난설헌의
<소년행><강남곡>을 뒤집어놓은 데서 ‘깊은 슬픔’을 더하는 것만 같다(http://theturnofthescrew.khan.kr/18 참조).
미친흥조차 다만 읽기만 하다 세상을 떠난 시인을 생각하면 애틋해서 견딜 수가 없다.
하늘이 푸르디푸른 철의 이유 있는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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