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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에 걸쳐 동북아시아를 피바다로 내몬 임진왜란. 쉬운 대로 통계만 뒤져도, 이 전쟁 전 170만 결에 이르던 조선의 등록된 경지 면적이 전쟁 후에는 54만 결로 줄었으니 전쟁을 겪으며 이 땅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는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지 모릅니다. 당시 실기류의 일반적인 기록이 전하는 참혹함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태연히 잡아먹다.”
제 자식은 차마 잡아먹지 못해 남의 자식과 바꾸어 잡아먹다.”

국제정세도 크게 변합니다. 대륙에서는 왜란이 명청 왕조 교체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막부가 전국을 장악하는 계기였습니다. 얄궂은 것은 그 참화의 무대였던 조선의 사정입니다. 무너졌어야 할 왕조와 지배체제는 큰 타격을 입고서도 제 몸을 보존했고, 연이어 호란을 겪으면서도 체제를 다져 그 뒤로도 300년 넘게 왕조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왜란이 우리 역사의 한 결절인 것은 분명합니다. 왕조와 지배체제는 유지되었지만 인민과 지식인의 동향은 전과는 확연히 달라지고 맙니다. 결정적으로, 인민은 직접 전투를 치르고, 외국군을 상대하면서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게 되었죠. 일단의 지식인 또한 이런 흐름을 틈타 변혁을 꿈꾸기도 합니다. 어수선하고 불온한 기운이 팽배한 가운데 우리 역사와 문화 각 부문도 사뭇 변화의 물결을 타게 됩니다.

문학사만 떼놓고 볼까요. 17세기에 들어간 한국문학사는 이제 본격적인 소설의 시대로 접어든다고 해도 되겠죠. 이때도 왜란은(이어진 호란을 포함해서) 분명 분기점입니다. 이는 곧 서사하고자 하는 욕구’(1)앞뒤 사정을 조리 있게 이야기하기 2)눈에 보이는 이야기 줄거리의 이면을 자세히 설명하기 3)적극적인 대화 지향이라는 뜻에서)의 폭발이라고 할 수 있겠죠.
시도 당대의 충격에 직면해서는 서사하고자 하는 욕구를 아주 강하게 드러냅니다. 왜란과 호란을 모두 겪었던 문인 벼슬아치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의 시 <415[四月十五日]>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안눌은 1607년 동래로 부임합니다. 동래는 왜란 당시 참혹한 전투를 겪은 곳입니다. 동래부의 군민과 그 지휘관이었던 동래부사 송상현의 분전기는 오늘날까지도 유명하지요. 바로 그 참혹한 역사의 현장에 벼슬 살러 온 이안눌은 아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써 남깁니다.

 

四月十五日 4월이라 보름,
平明家家哭 이른 아침부터 집집에서 울리는 곡소리에
天地變蕭瑟 천지도 변해 으스스한데
凄風振林木 찬바람은 숲속 나무를 흔든다.
驚怪問老吏 놀라 웬 곡성이 저리 슬픈가?”,
哭聲何慘怛 늙은 아전에게 물으니 대답한다.
壬辰海賊至 임진년(1592)에 왜놈들이 쳐들어왔고
是日城陷沒 [16년 전] 오늘이 바로 동래성이 함락된 날입니다.
維時宋使君 그때 송 사또[당시 동래부사 송상현]께서는
堅壁守忠節 방어를 굳게 하고 충절을 지키시어
闔境驅入城 온 고을 사람들 성안으로 들어왔으나
同時化爲血 한 번에 피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投身積屍底 쌓인 시체 밑에 숨어
千百遺一二 목숨을 건진 경우는 천 명 백 명 중에 한둘이나 될까요.
所以逢是日 이 때문에 그날이 돌아오면
設尊哭其死 제사상을 차려놓고 망자를 위해 통곡합니다.
父或哭其子 아비가 아들 때문에 통곡,
子或哭其父 아들이 아비 때문에 통곡,
祖或哭其孫 할아비가 손자 때문에 통곡,
孫或哭其祖 손자가 할아비 때문에 통곡,
亦有母哭女 어미가 딸을 때문에 통곡,
亦有女哭母 딸이 어미 때문에 통곡,
亦有婦哭夫 아내가 남편 때문에 통곡,
亦有夫哭婦 남편이 아내 때문에 통곡,
兄弟與姉妹 형제며 자매가
有生皆哭之 살아남은 자가 있다면 모두 통곡합니다.“
蹙額聽未終 얘기느 다 듣지 못했는데 얼굴은 찌푸려지고
涕泗忽交頤 눈물은 어느새 턱으로 굴러 떨어지는데
吏乃前致詞 아전이 다시 말을 꺼냈다.
有哭猶未悲 곡해 줄 사람이나 있으면 아직 슬프지도 않게요.
幾多白刃下 번뜩이는 칼날 아래 온 가족이 몰살당해
擧族無哭者 곡할 사람조차 하나 없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데요!”
-이안눌, <415> 전문



                                             [사진_이형석이 작성한 동래 전투 개황 일부. <임진전란사 상>에서]


위 작품은 전하고자 하는 사연이 사또와 늙은 아전의 대화라는 액자 안에 담겨 있습니다
. 대화라는 상황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는 한층 극적인 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어 참상은 혈연을 나타내는 낱말에 의해 구체화됩니다.
아비, 아들, 할아버지, 손자, 어미, , 아내, 남편, 형제, 자매에 이르는 혈연은 중세 인간의 근원적인 삶의 형식이라는 점을 떠올려야 합니다. 이들이 지상에 없다는 것은 당대의 삶이 완전히 파멸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아예 온 가족이 저세상으로 가, 곡해 줄 사람조차 지상에 남지 못한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데요!(幾多白刃下/擧族無哭者)

이안눌은 구구한 진술은 싹 빼고, 반복되는 통사 안에 한눈에 들어오는 어휘를 최대한 빠른 호흡으로 제시하며 이 긴 시를 한 편의 이야기로 이끌고 있습니다. 아전의 마지막 진술을 이끄는 액자 보여주기가 끌어올린 시의 형식적 완성도 지나칠 수 없습니다. 듣는 쪽에서 듣고 울었다라고 끝낸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하는 상대를 보여줌으로써 대화 상황이 또렷해지고 작품의 입체감이 한결 살아납니다. 통곡, 통곡, 통곡 뒤에, 통곡조차 할 수 없는 상황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진술 또한 함축과 긴장을 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제목 ‘415입니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한시 제목 다른 데서 본 적 있나요.

여기서 ‘415은 역사의 시간, 그 흐름을 한 장으로 집작하고 있습니다. 시니까 흐름도 한 장에 담아야겠죠. 그러나 마음의 추이는 이미 서사에 압도되었습니다. 엄청난 사건 앞에서 시는 이렇게 변하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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