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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녹아가는데, 아직 다 녹지 않고 남아 있는 눈, 이를 잔설殘雪이라 한다.
연휴도 하마 이울고, 입춘 지난 골목엔 잔설이 남았을 뿐이다. 초순의 막바지니 이러다 양력 2월도 휙 지나가리라. 잔설의 감상이 연휴 막바지에 잇닿으매 떠오르는 시 한 수.

 

北風吹雪打簾波 북풍에 밀려온 눈보라에 발은 일렁이고
永夜無眠正若何 기나긴 밤 한숨도 못 잤으니 어쩌나
塚上他年人不到 무덤엔 해 지나도 찾는 이가 없으니
可憐今世一枝花 가련하다, 살았을 적의 일지화一枝花
_소홍의 절구絶句

 

소홍小紅은 평안도 성천의 기생이란 사실과 한시 몇 수가 전해올 뿐 자세한 경력은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대략 19세기를 살다 가지 않았을까 막연한 추측을 할 뿐. 서울, 평양, 전주, 진주의 일급 기생이 아닌 데다, 명사며 기남자들 사이에 난 사연이 없다면 기생의 일생쯤 그 누구도 기억하고 기록할 리가 없는 것이다.

위 절구는 소홍이, 세상을 떠난 동료 기생 일지화를 생각하며 쓴 시다
. 시라지만 은유와 상징의 밀도가 떨어져 완성도까지 말하긴 뭣하다.
생각의 실마리가 풀려 나오는 대로 한자로 적다, 어찌어찌 운은 맞추다... 양반을 상대해 먹고살아야 하므로 아, <천자문千字文> <통감通鑑> 이상의 교양은 있었겠구나, 양반 손님 앞으로 급한 전갈 한 장 왔을 때 눈치를 발휘할 선의 면무식은 되었겠구나 싶다. 그러매, 그러므로 더욱 바로 느껴지는 마음속 진정. 이런 게 바로 지방 무명 기생의 시다.

북풍이 눈보라[吹雪] 몰고 오는 성천은 어떤 곳인가. 이상이 <매일신보> 1935927일자~1011일자 사이에 발표한 성천을 제재로 한 수필 속, 바로 그 성천成川이다.
성천은 동명성왕 주몽과 동명성왕에게 패해 나라를 잃은 송양의 전설을 간직한 고장이다. 높은 산지 덕분에 1945년 무렵까지도 화전민이 많았던 곳이다. 이상은 성천을 이렇게 그렸다.

건너편 발봉산에는 노루와 멧도야지가 있었답니다. 그리고 기우제 지내던 개골창까지 내려와서 가재를 잡아먹는 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동물원에서밖에 볼 수 없는 짐승, 산에 있는 짐승들을 사로잡아다가 동물원에 갖다 가둔 것이 아니라, 동물원에 있는 짐승들을 이런 산에다 내어 놓아준 것만 같은 착각을 자꾸 느낍니다.”
_이상, <산촌여정: 성천 기행중의 몇 절>에서

그러나 공기는 수정처럼 맑아서 별빛만으로라도 넉넉히 좋아하는 누가복음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참 별이 도회에서보다 갑절이나 더 많이 나옵니다. 하도 조용한 것이 처음으로 별들의 운행하는 기척이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_이상, <산촌여정: 성천 기행중의 몇 절>에서

짐승과 별들의 고향 성천. 그래도 평양과 가깝고 대동강변 절경을 끼고 있던 덕분에 조선 객사 건축의 명품으로 손꼽히는 성천 동명관東明館을 품은 고장이기도 했다. 성천 기생의 특별한 수요는 대개 동명관이 발생시켰으리라.

이런 고장 성천에서 북풍이 분다.
북풍에 밀려 눈보라는 드리운 발을 때려 일렁이게 한다[打簾波].이 소리에 짐짓 핑계를 대는 것일까. 시적자아는 긴나긴 밤 아예 잠 한숨 이룰 수가 없다[無眠]. 그러면서 더욱 속이 타 내뱉는다. 한숨도 못 자는 이 밤을, 내 마음을, 내 처지, 이를 어째?[若何]
약하若何어떤가” “어쩌나들의 뜻을 품은 말이며, 여기서 은 굳이 새길 필요 없는 허사다.

그 뒤는 그저 말 그대로다. 총상塚上, 곧 무덤엔 일지화가 세상을 떠나고 해가 바뀌어도 찾아오는 이 하나 없다[他年人不到].
성천 동명관, 강선루에서 바라보이는 절경은 조선 시대에 유명한 관광 상품이었다. 여행이 아닌, 그저 관광이라면 수많은 남성들이 여성까지 한 몫에 낀 패키지관광을 바랐으리라. 소홍도, 일지화도 거기 낀 상품이었을 터. 인격 아닌 상품을 추모할 사람은 없다. 같은 기생 신분 소홍에게, 일지화의 처지는 남의 일일 수 없다. 이 쓸쓸한 무덤에 비추매 그 살았을 적[今世, 여기서는 금생今生과 같은 뜻으로 새기면 되겠다]이 더욱 가련타.

마음에 파문을 내고, 마음에 느꺼움을 채우기에 정히 잘되고 잘난 작품만 소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서툴다고 할 만하되 뱃속 저 깊은 데서 토해 나온 직정을 마주하고 보니 감상이 더욱 일렁인다.

사족이지만, 기생을 추모한 사내는 조선 시대를 통틀어 몇 되지 않는다. 황진이를 추모한 임제, 매창을 사람 취급했던 허균 들은 천하에 드문 경우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임제와 허균에게 충분히 존경을 부칠 수 있다.

사진_성천 동명관의 배치평면도.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재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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