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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의 공부

앞서 허엽과 허봉 들은 허난설헌에게 당대 어떤 여성에게도 허락된 적 없던 공부길을 열어주었다고 했습니다만 이 점은 허균이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바입니다.

형님들과 누님은 가정에서 글을 배웠다(兄姊之文得於家庭).”
_허균,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허난설헌의 삶을 기록한 허균이 가정에서 글[여기서는 문학으로 미루어 볼 만합니다]을 습득했다고 하면서 남자 형제들과 나란히 일컬었습니다. 또한 허균은 누이의 시는 더욱 맑고 굳세고 우뚝하고 아름다워, 당나라 현종 때나 대종 때의 수준보다 높았다는 평가도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아버지 허엽, 큰형 허성, 작은형 허봉의 학문과 시문을 평가하며 나란히 쓴 것입니다.
이를 보면 허난설헌에게는, 적어도 허엽 직계 안에서만큼은 여느 형제들과 다름없는 교육 기회가 있었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기회 이전의 재주, 기회를 쥔 뒤의 성취를 보이지 못했다면 거기서 그만이었을 겁니다. 허난설헌이 여덟 살 때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을 지어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는 일화는 그 재주와 성취가 가르치는 이들을 얼마나 설레게 했을지를 잘 보여줍니다.

가정에서도 허난설헌의 공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둘째 오빠 허봉입니다. 허봉은 누이동생이 시집간 뒤에도 자신이 애독하던 두보 시 주석서 <두율杜律>을 선물로 보내며 이런 헌사를 부칠 정도였습니다.

“...나는 몇 년이나 이 책을 보물처럼 간직했다. 이제 새로 장정했으니 한번 읽어 보아라. 내가 열심히 이 책을 권하는 깊은 뜻을 져 버리지 않는다면, 소릉의 희미해져가는 소리를 다시 반씨의 손에서 나오게 할 수도 있겠지(余寶藏巾箱有年, 今輟奉玉, 汝一覽, 其無負余勤厚之意, 俾少陵希聲復發於班氏之手可矣.”
_허봉, <제두율권후봉정매씨난설헌題杜律卷後奉呈妹氏蘭雪軒>에서

아끼던 귀한 책을 보내는 마음은 따듯하고, 격려는 힘차기 이를 데 없습니다. 소릉은 두보의 호이고 반씨<한서漢書>를 편찬한 반고班固의 누이 반소班昭를 말합니다. 반소는 <한서> 교정, 교감에도 참가한 것으로 전해오는 대표적인 동아시아 여성 지식인입니다.
이제 소릉과 반씨라는 비유를 새기며 다시 읽으면, “희미해져가는 두보의 문학 전통이 내 누이동생의 손에서 다시 부활하길 바란다, 그러니 부디 내 뜻 저버리지 말고 이 시집 열심히 읽어다오하는 속뜻이 드러납니다.
형제한테라면 모를까, 출가외인이 된 누이동생의 재주를 아끼는 마음을 두보와 반소라는 중세 최대의 교양 아이콘에 부쳐 드러낸 예를 어디서 다시 보겠어요. 허봉의 마음씀씀이는 누이에게 붓 한 자루를 보낼 때도 아래와 같이 따듯하고 도타웠습니다.

仙曹舊賜文房友 신선 나라에서 오래전에 내려준 서재의 벗을
奉寄秋閨玩景餘 가을 규방에 삼가 보내니 한 시절 풍경을 알뜰히 완성하시게
應向梧桐描月色 생각건대 오동을 바라 달빛도 그리고
肯隨燈火注虫魚 즐겨 등불 아래서 벌레며 물고기도 그리고
_허봉, <누이에게 붓을 보내며[송필매씨(送筆妹氏)]> 전문

후세의 비평가도 공부길을 열어주고, 당대 최고의 시인 이달에게 문학 수업을 받게 하고, 시집간 뒤에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작은오빠의 존재를 잊지 않았습니다.

난설헌 허씨의 시는 이달과 작은오빠 하곡으로부터 나왔다(蘭雪軒許氏詩, 出自李蓀谷及其仲荷谷).”
_김만중金萬重,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하곡은 허봉의 호.

허난설헌의 교양과 공부의 든든한 바탕을 제공했던 허봉.
허봉은 당시 동아시아 문학에서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고답적인 갈래인 한시를 통해 자신의 속내를 누이와 나누기도 했습니다.

嶺樹千重遶塞城 영마루 나무는 변방 요새를 겹겹이 두르고
江流東下海冥冥 강물은 동쪽, 저 아득한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
辭家萬里堪怊悵 집 떠나 만리라니 쓸쓸한 노릇
愁見沙頭病鶺鴒 수심 깊은 모래톱에서 바라보느니 병든 할미새
_허봉, <누이에게[기매씨(寄妹氏)> 전문

귀양지 갑산에서 누이게 보낸 위 시는 문학 감수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는 보낼 수 없는 은유와 서정적 분위기를 한껏 내뿜고 있습니다. 서로를 알기에, 서로를 믿기에 가능한 통신 방법입니다. 한편 허난설헌은 귀양간 둘째오빠를 이토록 애틋해했습니다.

暗窓銀燭低 어두운 창가에 촛불은 나직이 타고
流螢度高閣 바람에 맡겨 나는 반딧불이는 높은 지붕을 넘나듭니다
悄悄深夜寒 적막한 한밤중 쌀쌀한데
蕭蕭秋落葉 우수수 가을 낙엽이 떨어지네요
關河音信稀 변방에선 소식마저 드무니
端憂不可釋 이 근심을 풀 길이 없습니다.
遙想靑運宮 멀리서 오빠 계신 곳[靑運宮] 떠올리매
山空蘿月白 인적 없는 산속에는 덩굴에 걸린 달빛만 밝겠지요
_허난설헌, <하곡 오빠께[기하곡(寄何谷)]> 전문

중세에 시를 주고받는 행위는 상대를 나와 대등한 인격으로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허난설헌의 교양과 공부는 허난설헌을, 조선 시대 어느 여성도 경험한 적 없는, 문학을 통해 마음과 마음의 신호의 세계로 이끌기도 했던 것입니다.


조선 시대 여성의
공부와 교양을 돌아보면
물론 상류층 여성이 어깨너머 공부를 통해 어느 정도의 한문 교양을 지니고, 한시를 창작한 예도 있습니다. 한시는 한문학에서도 가장 고답적인 갈래입니다. 한시를 쓰려면 글공부 제대로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공부의 본격성성취의 규모와 질이 문제입니다.
완결된 한 권의 시집을 남겼는가? 그 시집이 출간 이후 끊임없이 읽히며 비평의 대상의 되었는가? 오늘날까지도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가? 들을 따지고 보면 아무래도 허난설헌의 문학이 우뚝해 보입니다.
그중에, 그 공부와 교양이 다만 현모양처의 미덕을 향하지 않았나? 아들의 과거 시험 닦달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드는 인물을 보노라면 뜨악하기도 한 걸요.
또 다른 계급으로 기생도 있습니다. 기생 가운데는 교양이 있었고 한시를 쓸 줄 알았던 기생도 있었습니다. 하나 여기에는 "놀 때 한문 자료상의 고사나 한시를 장난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류층 남성"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 특성이 낳은 교양이라는 특수한 사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날 서구 여러 나라에는 에스코트걸이라는 매소부(매소는 얼마든지 성매매로 연결됩니다)가 존재하는데요, 고급 에이전트일수록 명문 대학 출신 교양 있는 여성을 조달하려고 하지요. 명문 대학을 졸업한 중늙이 부호들과 말이 통해야 하거든요.
이런 특수한 사정을 넘어서는 몇 편의 작품을 남긴 기생이 없지 않지만, 이때 또 다시 그 공부의 본격성” “성취의 규모와 질을 떠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



사진_윤기언 화백이 그린 허난설헌의 "꽃답고 즐거웠던 시절".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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