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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외인
그러나
언제까지나 아버지와 오빠와 아우와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조선 시대의 양반가
여성이 혼인하지 않은 채 영원히 제 집안에 머물 길은 없었습니다.
허난설헌은 열다섯
살이 되던 1578년쯤 양천 허씨네만큼이나 명문가였던 안동
김씨 가문의 김성립에게 시집갑니다(연대 미상.
추정).
그런데 부부의 금슬은
좋지 못했던 듯합니다.
남편 김성립은
허난설헌이 시집가고 12년 동안이나 과거 시험에 붙지
못했는데요,
이러는 사이 재주
높은 아내에게 열등감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허난설헌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공부를 많이 한 며느리가 ‘건방지고’
‘되바라져’
보였을까요.
이에 대한 허균의
기록은 몹시나 직접적입니다.
“아아!
(내
누이는)살아서는 금슬이
맞지 않더니 죽어서는 제사가 끊어지는 지경을 면치 못하셨도다(嗚呼,
生而不合於琴瑟,
死則不免於絶祀).”
_허균,
<학산초담鶴山樵談>에서
“내 돌아가신
누님은 어진 데다 뛰어난 문장가였지만 시어머니의 이해를 받지 못했고,
또 두 자녀를
잃고는 끝내 한을 품고 돌아가셨다(余亡姊賢而有文章,
不得於其姑,
又喪二子,
遂齎恨而歿).”
_허균,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허난설헌은 소생의 두
남매를 자신보다 먼저 저세상에 보낸 어머니였습니다.
두 아이를 저세상으로
보낸 어머니에게 금슬이며 시어머니와의 사이가 다 무어겠어요.
자식 잃은 어머니의
한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허난설헌은 그 심정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去年喪愛女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잃고
今年喪愛子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다니
哀哀廣陵土
서럽고 서러운 광릉
땅에
雙墳相對起
두 무덤이 마주보고
섰구나
蕭蕭白楊風
백양나무 사이로는
쏴아아 바람이 불고
鬼火明松楸
소나무 가래나무
사이로는 번쩍이는 도깨비불
紙錢招汝魄
지전으로 너희 넋을
부르고
玄酒奠汝丘
너희 무덤에 술을
따른다
應知弟兄魂
그래,
알겠다,
너희 오누이의
혼은
夜夜相追遊
밤마다 어울려
놀겠지
縱有腹中孩
내 배 속에 아이가
있지만
安可冀長成
그것이 잘 크기를
어찌 바라겠니
浪吟黃臺詞
애끓는 노래 하염없이
부르며
血泣悲呑聲
피눈물을
삼킨다
_허난설헌,
<아이를 잃고
통곡하다[哭子]>
전문
*경기도 초월면 지월리의 안동 김씨
가족묘 안에 허난설헌과 그 자녀들이 잠들어
있다.
*지전紙錢:
여기서는 의례용
종이돈.
망자를 위로하는
재물로 보면 되겠다.
*황대사黃臺詞:
여기에는 당고종과
무측천則天武后,
그들의 아들인
홍弘과 현賢의 고사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고사를 따르면 전고의
오류일 수도 있다.
번잡하므로,
나중에
주석하겠다.
집안 사정 또한 허난설헌의 애를
태웠습니다.
아버지 허엽과
작은오빠 허봉은 정치 혼란의 한복판에 서 있었는데 점점 정치적인 힘을 잃어갔습니다.
허엽은 서울의 높은
관직에서 지방 벼슬로 밀려나다가 1580년 경상도 상주에서
죽었습니다.
허봉은 권력 다툼
끝에 귀양을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지 못하고 1588년 금강산에서
죽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가족이
임종을 지킬 수 없는 데서 돌아간 셈이지요.
허난설헌은 집안에서
떨어져 나온 뒤,
자식의 죽음은 물론
아버지의 죽음에다 자신을 그렇게 아끼던 작은오빠의 죽음까지 겪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허난설헌이
죽은 뒤이기는 하지만,
막내 허균도 당시의
지배 계급이 불온하다고 여긴 <홍길동전>과 같은 작품을 쓰는가
하면,
사회에 불만이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더니 1618년 반역죄에 걸려들어
처형당합니다.
이렇게 해서 허난설헌
집안은 완전히 망하고 맙니다.
난새의 노래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던 아버지와, 오빠와, 아우와 떨어진 출가외인은 허난설헌은 돌아오지 않을,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그리며 이런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結廬臨古道 옛 길가에 초가집 짓고
日見大江流 날마다 큰 강 바라본다.
鏡匣鸞將老 거울 속 난새도 이제 늙어가고
花園蝶已秋 꽃동산 나비도 벌써 가을을 맞았지.
寒沙初下雁 차가운 모래밭엔 기러기가 내리고
暮雨獨歸舟 저녁 비 맞으며 홀로 돌아오는 배.
一夕紗窓閉 하루 저녁에 비단 창문 닫고서
那堪憶舊遊 함께 놀던 옛 추억마저 감당할 수 없어라.
_허난설헌, <처녀 적 친구에게[寄女伴]> 전문
쓸쓸하기 그지없는 이 시에 나오는
‘난새[鸞]’는 우는 소리가 아름답다는 전설 속의
새입니다.
난새와 얽힌
옛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옛날에 계빈국罽賓國의 왕이 난새를
사로잡았습니다.
왕은 새장에 난새를
가두고는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기다렸으나,
웬걸,
3년이 지나도록 울지
않았답니다.
이에 부인이 난새가
짝을 보면 울지 않을까요,
하기에 난새 앞에
거울을 놓고 제 모습을 비춰 보게 했답니다.
난새는 거울 속 제
모습을 짝의 모습으로 착각했는지,
거울을 보며 드디어
한 번 울었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만이었습니다.
난새는 그렇게 딱 한
번 슬피 울고는 죽었습니다.
(계빈국:
오늘날의 인도 북부
카슈미르에 있었던 왕국.
한나라와 당나라의
공식 기록 속에 흔적이 있고,
당나라 스님
현장玄奘도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그 기록을 남겼다.
한나라,
당나라 사람들에게는
지명만 알려진 신비의 땅이라 할 수 있다.)
잘나고 우뚝하던 아버지,
그렇게 누이를 아끼던
오빠,
사랑하던 아우과
함께였던 어린 시절에,
또한 함께 어울리던
동무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정
없는 남편,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나마 자식 둘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 피눈물을 삼키는 신세인데 집안은 자꾸만 기울어 가고,
자신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추억마저 감당할 수
없는 시인은 다만 거울 속 난새가 울 듯 시를 쓸 뿐...
어느 순간 허난설헌의
시는,
어쩌면 한 편 한
편이 다 ‘난새의 노래’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이 지다
또 다른 허난설헌 시 속 난새의 예로
<꿈속에서 광상산에서 노닌
이야기[夢遊廣桑山詩序]>를 지나칠 수 없는데요,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1585년 허난설헌은 상을 당해 외가에 와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꿈을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허난설헌은 신선의 세계인 광상산에 오릅니다.
온갖 기이한 풍경을
보며 광상산을 걷다가 허난설헌은 두 선녀를 만납니다.
허난설헌은
선녀들로부터 ‘당신은 원래 신선 세계와 인연이 있던
사람’이란 말을 듣는가 하면,
두 선녀의 부탁을
받고 시도 한 수 쓰게 됩니다.
자신이 본 신선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해 묘사한 구절 뒤에,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알쏭달쏭 구절이 이어진 다음 시가 그것입니다.
碧海侵瑤海
푸른 바닷물은
보배로운 바다에 넘나들고
靑鸞倚彩鸞
파란 난새는 아롱진
난새에 기대다
芙蓉三九朵
스물일곱 송이
연꽃은
紅墮月霜寒
서릿달 위에 붉게
떨어지다
신선 세계는 보배로운 바다 위에 떠
있습니다.
허난설헌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난새’는,
이번만큼은 새장
속이나 거울 속에서 나와 넘나드는 바닷물을 배경으로 서로 기대고 있습니다.
난새는 인간 세계를
벗어나 신선 세계에서 훨훨 나는데 하필 이때 이울어 떨어지는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이라니!
허균은 이 시를 누이 죽음의
“예지몽豫知夢”을 노래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몇 해 뒤인 1589년은 허난설헌이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입니다.
이 해에 허난설헌은
자신이 살아생전에 쓴 작품을 모두 불사르게 하고는 두 아이들을 따라 저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 같던 허난설헌의 스물일곱 해 삶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허균엔 따르면,
허난설헌은 유언으로
자신의 저술을 “불태우라(茶毘之)”고 했습니다.
그러나 허균은
이번만큼은 누나의 뜻을 도저히 따를 수 없었습니다.
허균은 남매가 함께
나누었던 기록,
자신이 가지고 있던
누나의 원고,
낭송하느라 머릿속에
간직했던 시구를 하나하나 정리했습니다.
허난설헌이 품고 있던
원고 대부분은 허균이 손쓰기 전에 모두 불탔으나,
허균이 이만큼이라도
갈무리한 덕분에,
200편이 조금 넘는
허난설헌의 시는 <난설헌집>에 담겨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전해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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