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슈베르트의 피아노 독주곡 <방랑자 환상곡>을 듣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입니다. 그리고 하필 이 시디의 대문 노릇을 하는 이미지는 보시는 것처럼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그림 <구름바다 위의 방랑자>입니다.낭만, 낭만주의라고 할 때, 쉬이 떠올릴 만한 이미지가 바로 <구름바다 위의 방랑자>와 같은 형상이 아닐지요. 알 수 없는 그리움, 떠나기, 사람을 지핀 환상, 길 위의 객수, 고독, 고독한 나그네의 마음속... 낭만, 낭만주의 기추는, 우선은 이런 것들입니다. 낭만, 낭만주의란 불만과 우울만으로는 아무래도 온전히 서기 어렵습니다.
지난 글에 소개한 임제 또한 여행에 취해 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그러나 임제의 시대는 <구름바다 위의 방랑자>와 같은 형상을 남기기는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 시대에는 자연이 화면에 담기려면, 자연은 먼저 ‘이상적인 산수화’로 변용이 되어야 했습니다. 또한 인간의 뒷모습이 화면을 꽉 채운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기념이나 의전을 위해 등장할 만한 우뚝한 인물의 초상이 아니라 신원불명인 자의 뒷모습을
포착하다니요. 이런 형상은 개인과 개인주의가 발생한 다음에나
가능하겠지요. 이런 사정을 헤아리매, 다음에서 보이는 임제의 낭만은 더욱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十五越溪女 15세 아리따운 처녀
羞人無語別 남부끄러워 말 한마디 없이 이별하더니
歸來掩重門 돌아와 문 닫고는
泣向梨化月 배꽃 비춘 달을 향해
눈물짓네
그지없이 낭만적이네요. 다른 고사 가져다 붙일 것도
없습니다. 그저 읽어 내려가는 대로입니다.
열다섯 살 먹은 아리따운 처녀가
있습니다. ‘월계녀越溪女’만큼은 설명이 필요하려나... 월계녀는, 굳이 고사를 찾으면 유명한 미인
서시西施입니다. 서시는 월나라 출신의 미녀로 빨래하러 갔다가 물에 얼굴을 비추자 물고기마저 그 아리따움에 취해
헤엄치기를 순간적으로 잊고는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는 고사를 남겼지요.
그러니 첫 구는 “열다섯 살 먹은, 서시처럼 아리따운 아가씨”, 곧 “한창 때인, 게다가 서시처럼 아리따운 처녀”로 새길 만합니다. 아니, 말 그대로 “시냇물 넘어 갔다 온 아가씨”라 못 할 것도 없습니다.
시내는 동네나 공동체 사이의
경계잖아요. 한밤중에, 집밖, 아니 동네 벗어났다고 하면 더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하하. 때가 때니까 대놓고 연애질하기
어려웠겠고, 그래서 늘 한밤중 출타고, 이별하는 판에도 남의 말질이 두렵고... 그 상황, 그 심정이 “남부끄러워[羞人]” 두 글자에 그대로 맺혔습니다.
“엄중문掩重門” 세 글자도 까다로이 볼 것 없습니다. “중重”에는 “포개다” “겹치다”의 뜻이 있지요. 그저 앞의 “닫다[掩]”에 이어 “엄중掩重” 두 자는 “닫다”로 새기기 충분합니다.
“이화월梨花月” 또한 낭만적 정취를 더합니다. 예서 이조년(李兆年, 1269~1342)의 못잖게 아름다운 시조 한번
볼까요?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 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밝기만 한 달빛에 배꽃은 더욱
흽니다. 아니 배꽃 덕분에 달빛이 더욱
도드라집니다. “이화월”은 바로 그런 풍경 속의 달을
가리키지요. 말도 못하고 돌아와 문을 닫고 눈물지을
때, 하필 바라보이느니 이화월.
시속의 목소리는 십오세 아가씨의 속사정을 어쩜 이리 잘 알고
있을까요. 사실 목소리는 십오세 아가씨의 시점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밖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임제는 어디 딱 붙박인 시선, 붙박인 자의 목소리만으로 시를 쓰지
않았습니다.
다음 그네타기 노래, <추천곡鞦韆曲>은, 영화용 카메라라기보다 텔레비전 카메라로 잡은
줌인, 줌아웃의 동영상입니다. 시적 자아의 시선, 목소리는 그네처럼 훨훨입니다.
1.
白苧衣裳茜裙帶 하얀 모시 치마저고리에 꼭두서니 물든 빨강
허리띠
相携女伴競鞦韆 처녀들 손에 손잡고 그네타기를 겨루는데
堤邊白馬誰家子 저 방죽의 백마 탄 이는 어는 집
도련님일까
橫駐金鞭故不前 금채찍 비껴 들고는 짐짓 나서지
않는다
2.
粉汗微生雙臉紅 분칠 위로 땀은 살짝 맺히고 발그레한 두 뺨
數聲嬌笑落煙空 아리따운 웃음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指柔易著鴛鴦索 고운 손길로 사뿐히 잡은 원앙줄(그넷줄)인데
腰細不堪楊柳風 가는 허리는 봄바람을 못 이길 듯
3.
誤落雲鬟金鳳釵 잘못해, 구름결 같은 머리에서 금비녀 떨어졌네
游郞拾取笑相誇 서성이던 도련님 금비녀 주워들고 웃으며 뽐내는데
含羞暗問郞君住 비녀 잃은 처녀 수줍어 가만히
묻는다, “도련님, 어디 사나요?”
綠柳珠簾第幾家 “버드나무 늘어진 몇 번째 집입니다.”
_임제, <추천곡> 전문
우리나라 단오의 그네타기는 모여 타는 사이에 떠들썩한 모임이 되는
데다가, 누가 높이 차고 오르는지도 겨루는 일종의
스포츠, 널뛰기와 더불어 여성들에게 허용된 얼마 되지 않은 스포츠 가운데
하나였죠. 그러고 보니 춘향이도 그네를 타다가 이도령을
만났군요.
처녀들이 손에
손잡고 몰려와 그네를 뜁니다. 이 자체가 시끌벅적한 행사요, 더구나 도려님들한테라면 체면 불구하고 볼 만한 볼거리겠으나 한 도련님은 그 앞으로 대놓고
나서지는 못합니다. 백마에 금채찍으로 화려하게 차린 도련님은
“짐짓[故] 그 앞으로 바로 나서지는 않았[不前]”습니다. 그저 저 너머 방죽에서 서성일 뿐.
이제 그네타기는 한창입니다. 이때 한 처녀의 화장, 그 분칠한 위로 땀이 송글송글 돋고 두 뺨은 어느새 발그레 주홍물이
들었습니다. “분한미생粉汗微生”, 흉하게 번진 거 말고, 베이스 위로 살짝 땀이 맺힐까 말까 한
상태죠. 그래서 “微”라고 썼습니다. 임제 이 사람, 화장 상태 관찰에도 일가견이 있군요(아, 나사못회전도 베이스와 원래 피부의 톤을 제법
알아봅니다).
그 처녀 발 굴러 높이 공중 높이 올라가서는 몇 줄기나 되는 아리따운 웃음을 구경꾼 잔뜩 모인
저 아래로 떨어뜨리곤 합니다[落烟空]. 게다가 그 처녀가 그넷줄 붙든 손길은 나긋나긋
곱고, 그 두 손길 사이로 보이는 허리는 가늘어
봄바람[楊柳風]을 못 이길 것만 같습니다.
한창을 지나 절정으로 가는 그네타기. 발 굴러 오를 때, 아차, 잘못해서 금비녀가 구름결 같은 쪽진 머리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걸 누가?, 예, 놀러 나와 어슬렁거리던 어느 집
도련님[游郞]이 주워들었네요. 그 도련님은 싱글거리며, 일행 또는 구경꾼들에게 “내가 주웠지!”하고 뽐내기까지 합니다[笑相誇].
이제 어째요. 그래도 금비녀는 찾아야죠. 음... 금비녀도 찾고, 다른 것도 찾을 테면 찾을 기회고.
분 위로 땀방울 살짝 비친, 두 뺨 발그레한 처녀는 “그거 내 거예요, 주세요”가 아니고요, “수줍어 가만히[含羞暗]”이기는 하지만 다른 말을 냅니다.
“어디 사나요?”
그리고 도련님의 대답은 보신 바와
같습니다.
슈베르트가 알았으면 그 작품을 뮐러나 괴테
시 리트에 가져다 붙이듯 했겠고, 프리드리히가 봤다면 그네타기 풍경 바라보기에 몰두한 그 뒷모습을 탐냈을 만한
임제였습니다.
이만한 낭만노래꾼, 낭만시인 임제는 “너절한 나라”에서 살다 “아까울 것 없는 죽음”으로 생을 마쳤습니다(http://theturnofthescrew.khan.kr/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