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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규 정치부 차장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 일이다. 프랑스 북부 ‘칼레’라는 시가 영국군에 포위됐다. 11개월을 버텼으나 끝내 항복해야만 했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 시민을 도살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칼레는 자비를 구했고, 왕은 “명망 높은 시민 대표들이 교수형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칼레 최고 부자인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먼저 자원했다. 시장이 나섰고, 상인과 그의 아들 등 일곱명이 나섰다. 영국 왕의 요구는 여섯명의 교수형이었다. 생 피에르는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했고 모두 동의했다. 


 


다음날 아침 생 피에르는 오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자원한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살아남으면 순교자들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먼저 죽음을 택한 것이다.


처형 직전 에드워드 3세는 임신해 있던왕비의 간청을 받아들여 이들을 살려준다. 1347년의 일이다.



김용환 (경향신문DB)



요즘 우리나라에 ‘7인회’라는 모임이 관심을 끌고 있다. 새누리당 원로그룹으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멘토임을 자처한 이들이다. 이들의 실체는 좌장이라는 김용환 상임고문의 한 인터뷰에서 드러났다. 김 고문은 ‘박 전 위원장을 돕는 원로그룹 좌장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사람들이 7인회라고 부르는데 가끔 만나 식사하고 환담한다”고 말했다.


멤버로 자신과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전 조선일보 발행인, 김용갑 전 의원, 김기춘 전 법무장관, 현경대 전 의원, 강창희 의원을 꼽았다.


이들에게 공교로운 공통점이 있다. 바로 ‘육법당(陸法黨)’과 ‘5·16’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세운 민주정의당은 ‘육법당’이라고 불렸다. 육군사관학교와 서울대 법대 출신 법조인들이 세운 정당이라는 뜻이다. 유신정권에 이어 1980년대에도 육사 출신 군인들이 장·차관, 청와대 수석, 국회의원, 공기업 사장이 돼 우리 사회를 쥐락펴락했다. 군 장성 정기인사는 사회적 관심사였다. 예비 리더들의 명단이어서다.


서울대 법대 출신, 특히 법조인들이 정부와 당에 중용됐다. 이들은 정당성 없는 군사정권에 국정운영 이념과 정책을 제공하고 집행토록 했다.


7인회에서 김용환 고문, 김기춘 전 장관, 안병훈 전 발행인, 현경대 전 의원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고, 최병렬 전 대표는 서울대 행정학과 출신이다. 


김용갑 전 의원과 강창희 의원은 10년 터울의 육사 출신이다. 가히 ‘육법회’(陸法會)라 불릴 만하다.


이들은 5·16으로 들어선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때 호시절을 누렸다. 김용환 고문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과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최병렬 전 대표는 조선일보에서 정치부장과 편집국장, 안병훈 전 발행인은 청와대 출입기자를 했다.


김용갑 전 의원과 강창희 의원은 유신 때 군에 있다가 5공화국 들어 각각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과 의원이 됐다. 김기춘 전 장관은 검사 재직 시절인 1974년 중앙정보부에 신직수 중정부장 법률보좌관으로 파견돼 유신헌법 제정의 실무를 담당했다. 현경대 전 의원은 유신 때 검사를 하다 5공 때 배지를 달았다.


우연인지 이들 나이를 합치면 ‘516’살이다. 김용환 80세, 최병렬 74세, 김용갑 76세, 김기춘 73세, 안병훈 74세, 현경대 73세, 강창희 66세이다.


이들이 부각되자, 민주통합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7인회가 있다는데, 수구꼴통이어서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한두 번 오찬에 가 뵌 적이 있다”면서도 “7인회라는 말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부인했다. 그럼 진실은 둘 중 하나다. 김용환 고문이 과장했거나, 박근혜 전 위원장이 모른 체했거나.


하지만 이들 ‘7인회’가 칼레의 시민 대표만 같았다면 어땠을까. 노년에 ‘꼴통’이라는 모욕을 들었을까. 박근혜 전 위원장이 단박에 모른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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