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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 존스홉킨스대 교수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이들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한 것은 심각한 일이다. 단순한 색깔론을 넘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헌법질서를 흔드는 발언이며, 사실관계조차 틀린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제91차 인터넷 라디오 연설에서 천안함 사건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2010년도 천안함 폭침 때도 명확한 과학적 증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똑같이 자작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늘 그래왔던 북한의 주장도 문제이지만,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우리 내부의 종북세력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경향신문DB)



이 발언은 대한민국 법치주의 원리를 심각히 훼손한다. 대한민국에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이 실정법으로 엄연히 존재한다. 이 법 7조 1항은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는 것을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것도 처벌대상이다.


이 대통령 발언대로 천안함 정부 발표에 의구심을 나타낸 사람들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라면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선전 동조”한 것이 되므로 국가보안법의 처벌대상이 된다.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것으로도 처벌대상이다. 그런데 검찰은 2010년 3월 이후 2년이 넘도록 천안함 의심세력에 대한 국가보안법 기소를 단 한 건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 이유는 아래에서 지적하는 것과 같이 공소유지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겠지만, 행정부 수반이 합법적 절차는 밟지도 않으면서 천안함 의심세력을 범법자로 낙인찍는 것은 헌법에도 명시된 무죄추정의 원칙과도 어긋난다. 


또 이러한 발언은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적 원칙과도 어긋난다. 천안함과 관련해 법원의 판결을 받았거나 심판 중인 사건들은 대부분 명예훼손과 관련돼 있지 국가보안법과는 관계가 없다. 사법부는 천안함 사건에 의심을 제기한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판결을 내린 적도 없고,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불특정 다수의 국민을 ‘종북세력’이라는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규정지은 것은 사법부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이 대통령의 이번 연설은 사실관계에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선후관계에 있어 북한의 주장이 앞서고 다른 사람들이 뒤이어 같은 주장을 되풀이해야 한다. 그런데 천안함과 관련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건 직후부터 의혹을 제기했고, 북한은 나중에서야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북한 국방위원회가 합동조사단의 중간보고서를 “날조”라고 주장한 것은 2010년 5월20일이었고, ‘국방위원회 검열단 진상공개장’에서 자세한 반박을 한 것은 11월2일이었다. 그 내용도 그동안 한국에서 제기되었던 것들을 대부분 “그대로 반복”한 것이었다. 굳이 이 대통령의 어법을 따르자면 대한민국 국민이 종북세력이 아니라, 북한을 ‘종남세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종북세력’이라고 규정하려면 북이 했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했다는 인과관계도 입증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의 선후관계가 맞지 않으므로 인과관계는 논의할 수조차 없다. 참고로 북한의 주장을 반복한다는 이유만으로 ‘종북세력’이 된다면 이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종북세력’이라고 보는지 궁금하다. 북이 인공위성 발사라고 주장하는 시험을 한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의장성명 2항에서 “이번 위성 발사”라고 북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았는가. 이명박 정부는 사실과 어긋난 말로 사회분열을 야기하기보다는, 제기된 합리적 의문들에 성실히 답변함으로써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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