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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햇볕 받으며 걷다 보니 땀이 차오른다. 얼굴을 덮은 마스크 때문인가 싶었는데, 여전히 겨울 외투를 입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신경이 온통 코로나19에 가 있어서일까. 3월이 벌써 중순으로 넘어간 것도 잊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학생들로 가득 차서 시끌벅적했을 대학 교정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매화나무가 문득 눈에 들어온다. 

거무튀튀하고 딱딱해 보이는 나무둥치 여기저기에 거짓말처럼 화사하게 꽃잎이 맺혀 있다. 봄이다.

퇴계 이황은 임종하던 날에도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을 할 정도로 매화를 사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매화시만 해도 100여 수를 남긴 퇴계에게, 매화는 그리움을 멈출 수 없어 아침저녁으로 찾아가곤 하는 벗이었고,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정신적 가치를 함께하는 동지이기도 했다. “뜨락을 거니니 달이 나를 따르는데/ 매화 곁을 돌고 돌아 몇 바퀴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앉은 채로 일어나길 잊었더니/ 매화 향기 옷에 가득, 달빛이 몸에 가득.” 매화와 한 몸이 된 퇴계는 “매화 너는 고고하여 고산이 어울리건만/ 어쩌다가 이 번화한 도성에 옮겨왔나”라며 자신을 매화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설중매라는 말이 운치를 자아내듯이 매화의 장처는 조매(早梅), 즉 누구보다도 일찍 핀다는 점에 있다. 퇴계는 눈 속에 피어난 매화를 보며 “어떡하면 이대로 달을 잡아두고/ 매화 지고 눈 녹는 것 멈출 수 있을까”라며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때로 퇴계는 “늦게 핀 매화여 자네 참뜻 내 알겠네/ 병든 이 몸 추위 겁내는 걸 알아서 그런 거지”라며 다른 매화보다 늦게 피어준 매화에게 고마워하기도 했다. 이르든 늦든 매화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매화꽃 피면 벗들을 불러 모아 술과 시를 즐기곤 하던 매화음(梅花飮)의 낭만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때다. 이 긴 터널이 언제 끝날지, 터널을 지난 뒤에 우리를 기다리는 현실은 어떠할지 참으로 우려스럽다. 하지만 우리가 코로나19 걱정으로 몸살을 앓는 동안에도 자연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봄을 피워내고 있다. 봄과 함께 이유 없는 희망이 단단한 나무껍질을 가르며 고개를 내민다. 그 희망을 나눌 사람이 매화보다 더 그립다. 다시 봄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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