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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지역에서 ‘맛집’을 고르는 나름의 눈썰미가 있다. 버스터미널과 기차역 주변에서 먹지 말라는 얘기는 도시에나 해당하는 말이고 작은 고장에서는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주변이 중심지여서 먹을 만한 식당도 그 주변에 있다. 군청이나 읍·면사무소의 공무원, 농협 직원들이 빛바랜 주렴을 손으로 들추고 들어가는 백반집이 맛있다. 군부대 소재 지역이라면 나이 지긋한 군무원들이 사병들을 데리고 가서 먹는 집이 맛집이다. 임실 터미널 근처의 피순댓국집도, 원통의 작은 국숫집도 그렇게 찾아낸 나만의 맛집이다. 

‘군세권’이란 말이 있다. 군인 외출이 허용되면서 상권이 되살아나는 효과를 말한다. PC방이나 노래방,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 카페 등 농촌 읍내에서 누가 이용을 할까 싶은 상점들이 즐비한 곳도 대체로 군부대 지역이다. 군부대 주변의 이미지를 유흥업소와 연관짓던 때도 있었지만 근래엔 농촌 지역의 유일한 상권이 군세권이다. 

철원, 화천, 인제, 고성 등 접경지역의 주민과 정치인들은 ‘국방개혁 2.0’에 따른 군부대 폐쇄 및 이전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의 여론은 대체로 싸늘하다. 그동안 군인과 그들을 면회 온 가족들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우면서 먹고 살았지 않았느냐며 자업자득이라는 말까지 퍼붓는다. 실제로 바가지요금과 관련한 민원이 자주 있기는 했지만, ‘군인 할인’을 해주는 상점들도 접경지역에 흔했다. 미담은 악담을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군부대 이전이나 폐쇄에 대한 반응은 지역사회의 내부를 갈라놓기도 한다. 상업 종사자들에게는 구매력이 있는 새로운 인구 유입이다. 하지만 군부대가 실제로 들어설 곳은 논밭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전주에 있던 35사단을 임실군으로 옮긴다는 계획에 임실군 주민들의 여론은 대체로 환영이었지만, 끝까지 저항한 대곡리와 감성마을 주민들에게는 갑작스러운 강제이주의 문제였다. 소농과 임차농의 비율이 높았던 그곳에서 논밭이 강제수용되면 고령의 농민들이 어디로 가서 농사를 짓겠는가. 주민들이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며 저항했지만 35사단은 임실군에 자리를 잡았고, 나는 늙은 군인을 따라 순댓국 맛집을 하나 발견했을 뿐이다. 

바가지요금 논란에 휩싸였지만 군사지역 주민들은 오랫동안 국가안보란 이유로 개발제한과 생활 불편을 감수해왔다. 국가안보의 혜택은 국민 전체가 누리지만 희생은 특정 지역에 국한된다. 그렇게 좋은 군부대인데, 왜 송파구에 있던 특전사가 경기 이천시로 옮겨갈 때 송파 주민들이 환영했나. 시설 주변의 불편과 미개발 때문이다. 대체로 도시들이 군부대 이전설치를 요구하는 것은 군사시설에 따른 개발제한구역으로 남은 곳들이 마지막 노른자위 땅이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군부대가 이전하고 나면 쾌적한 아파트와 상업시설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지로 부르는 접경지역은 타의로 군부대 중심의 생활을 꾸려온 곳이고, 군부대가 떠나면 폐허만 남는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휴가 나가는 군인들 때문에 유지되던 군내버스마저도 운행시간이 줄어 주민들은 버스터미널에서 하염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 군인 자녀들이 다녀서 유지되던 학교도 통폐합되어 아이들이 더 멀리 통학을 하거나 유학을 나가 동네는 더욱 쓸쓸해질 것이다. 바가지요금을 씌워 먹고살겠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 삶의 문제가 남는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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