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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만원으로 시작해 5조원에 달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배달의민족(배민). 그 성장의 이면엔 밤낮없이 눈비를 뚫고 도로를 달린 배민라이더들이 있다. 라이더들은 초창기 먼 거리에 뜨문뜨문 콜이 뜨던 시절부터 배달을 했다. 당장은 시원치 않지만 회사가 잘돼야 나도 잘된다는 생각으로 성실하게 일했다. 배달사업이 ‘대박’을 터뜨리며 폭발적으로 성장해도 단가는 그대로였지만, 군말 없이 일해왔다.

그런데 점점 라이더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올 하반기, 배민은 배민커넥트라는 이름의 ‘크라우드소싱’ 배달을 시작했다. 그런데 커넥터들이 받는 수수료는 기존 라이더의 최대 2배를 넘는 수준이었다. 배민은 커넥터 모집광고를 대대적으로 벌였고, 현재는 1만4000명이 넘는 규모로 급성장했다. 커넥터 중 자전거 퀵보드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2㎞ 반경 내 콜을 먼저 보여주기도 한다. 안 그래도 콜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마디로 ‘꿀 콜’을 이들이 선점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배민은 올 9월부터는 새로 들어오는 라이더들에게 최대 200만원의 보너스를 주고, 수수료도 최대 2배 이상 쳐줬다. 같은 물건을 같은 곳에 배달하고도 어떤 사람은 3000원을, 어떤 사람은 6000원을 받으며 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오래 일한 라이더들이 우대는커녕 차별을 받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배민의 라이더 정책은 널뛰기하듯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 들어온 시점에 따라 어떤 라이더는 오토바이 렌털료와 보험료를 내기도 하고 안 내기도 한다. 건당 수수료를 떼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무단지각에 벌금을 부과하다가 언론에 문제가 터지자 소리소문 없이 없앴다. 그중 ‘백미’는 이른바 ‘고무줄수수료’다. 배민은 매일매일 배달수수료를 바꾼다. 매일 밤 9시에 다음날의 수수료를 라이더에게 통보하는 것이다. 오늘의 수수료가 왜 깎였는지, 옆 동네에 비해 여긴 왜 낮은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아무 설명도 없다. 그냥 이 돈 받고 하든지 말든지 라이더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라이더들은 배민의 이런 정책이 ‘테스트’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방식이 최적의 효율을 뽑아내는지 테스트를 해보고 있다는 것이다. 라이더들은 매번 바뀌는 정책에 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쌓아주고 있고, 이것이 효율의 원료가 되는 것이다.

한편 테스트는 라이더들이 길게 일할수록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길게 일하면 아는 것도 늘어나고, 요령이 생기며 불만이 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민은 길게 일하는 라이더들을 차별하며 이제 그만하고 떠날 것을 종용하는 것이다. 빈자리는 보너스를 찾아 온 새 라이더가 채운다. 배민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낮은 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천지인 대한민국에서 라이더라도 하길 원하는 사람들은 쌔고 쌨다는 것을.

배민은 회사가 성장하도록 오랜 시간 바닥에서 땀 흘린 라이더들을 배신했다. 최근 3년만 따져도 배민에선 수백 건의 산재사고가 발생했다. 차에 치이고, 바닥에 넘어지며 많은 배민라이더들이 사고를 당했다. 지난주 토요일 밤에도 한 배민라이더는 오토바이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큰 부상을 입었고, 한 라이더는 신호를 무시한 택시에 받혀 몸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래도 우리가 만난 많은 배민라이더들은 배민이 잘되길 바란다. 가장 큰 배민이 좋은 모델을 만들어 주길 바라는 것이다. 오래 일한 사람을 대우해 주는 상식이 통하리라는 믿음도 있다. 아무리 라이더 수가 많아도 소속감을 가진 능숙한 라이더들이 있어야 이른바 ‘똥 콜’(라이더들이 꺼리는 콜)을 수행해 서비스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라이더들이 노조에 가입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배신은 당장의 이익을 줄지 몰라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배신이 계속되면 배민의 발랄하고 따뜻한 이미지도 훼손될 것이다. 

이제 글로벌 기업이 된 배민이 라이더들의 호소를 경청하고 상식과 신의를 지키는 기업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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