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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 인간의 삶은 노마드였다. 정처 없이 떠돌며 사냥하고 채집했다. 각자도생의 세월이었다. 농업을 배우면서 정주생활을 시작했다. 경작지가 확대되고 잉여생산물이 생겨나면서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공동생활이 진전되면서 마을에 광장, 시장, 신전이 들어섰다. 서양의 아크로폴리스, 동양의 도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서울을 뜻하는 ‘경(京)’의 본래 의미는 ‘사람이 만든 높은 언덕’이다. 도시의 중국어 ‘성시(城市)’는 성곽과 시장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동양에서는 ‘도시’보다는 도읍·도회라는 용어를 더 즐겨 썼다. 규모가 큰 도시는 으뜸도시라는 뜻으로 경성(京城)이라고 불렀다. 그곳에는 지배자와 귀족, 무사들이 살았다. 고대 로마제국은 세계를 ‘우르비’와 ‘오르비’로 구분했다. 우르비(Urbi)는 황제와 교황이 사는 로마를, 오르비(Orbi)는 로마를 제외한 지방세계를 가리킨다. 우르비의 위상은 동양의 도시보다 높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제국의 권위가 서려 있었다. 교황이 교서를 공포할 때면 으레 ‘우르비 엣 오르비’로 시작했다. ‘로마 도시와 전 세계에게’라는 뜻이다.

로마제국은 사라졌지만 라틴어 ‘우르비 엣 오르비’는 살아 있다. 지난 25일 정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르비 엣 오르비’ 강론을 통해 전 세계에 성탄절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전쟁과 분쟁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평화를 기원했다. 로마 바티칸에서는 부활절과 성탄절에만 교황이 ‘우르비 엣 오르비’ 강론을 한다. 과거의 선포나 포고가 아니다. 로마시대의 권위주의적 내용은 없다. 세계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다. 

고대의 도시에는 지배자와 인민을 보호하기 위해 성곽을 둘렀다. 그 결과 세상은 성안과 성 밖, 도시와 시골로 나뉘었다. 도농(都農·도시와 농촌), 도비(都鄙·도회지와 시골), 성향(城鄕·도시와 지방)과 같은 차별과 이분법이 생겨났다. ‘우르비 엣 오르비’도 본래 로마와 비로마를 구분하는 용어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통합과 화해의 대명사가 됐다. 1946년 가톨릭재단으로 출발한 경향신문의 제호는 교황청의 ‘우르비 엣 오르비’에서 따왔다. 서울과 지방, 즉 전국을 포용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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