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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술 마시고 뻗어 있는 이종사촌 오빠더러 ‘먹고 대학생’이라 야단치면서도 엄마는 콩나물국을 끓여 주었다. 설렁설렁 대학교에 다니는 한가로운 대학생을 ‘먹고 대학생’이라 말했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의 처지는 영 다르다. 올해도 기말과제로 써내라 한 대학생들의 ‘삼시 세끼 보고서’에서 눈여겨본 것은 대학생의 점심이었다.

‘학식’이라 부르는 학생 식당에 가는 비율이 높긴 하지만 여전히 편의점 음식이나 ‘밥버거’로 빠르게 한 끼를 처리하는(?) 비율도 그와 비슷하다. 학교 앞 식당도 맘 편하게 가지 못한다. ‘학식’이나 편의점보다 1000원 정도 값이 더 나가 부담일 때가 많고 학교 밖까지 나갈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대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자신이 먹을 점심을 고르면서 돈, 시간, 맛까지 고민하다 보면 점심 한 끼 먹기가 그리 복잡하다. 결국 자신의 결정장애 때문이려니 하고 만다. 선택에 애를 먹는 이유는 돈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요 변수는 ‘시간’이다. 대학교에 점심시간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교에 점심시간이 없다 하니 동료들 반응이 ‘어떻게 학교에 점심시간이 없느냐’와 ‘대학교에 점심시간이 왜 따로 있느냐’로 나뉜다. 하지만 이 세대의 공통점은 점심시간이 따로 있거나 없거나 점심은 먹었다는 것이다. 공강 시간이 있어서였다. 점심시간이 따로 있던 나는 그때 제육볶음에 밥만 먹어야 했는데 ‘걸어다니는 식권’인 선배들의 꼬임으로 먹던 반주가 늘 문제였다. 딱 한 잔의 소주가 결국 몇 병이 되어 수업에 빠지기 일쑤였다.

출강했던 대학에도 원래는 점심시간이 따로 있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대학 방송국의 점심 방송과 함께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가끔 오글대는 사랑고백 사연도 나오는 그런 방송이 점심시간과 함께 사라졌다. 3학점짜리 수업시간은 50분 수업, 10분 휴식을 기본 뼈대로 삼았다. 하지만 3학점 수업을 1.5학점으로 잘라, 쉬는 시간을 없애고 75분으로 나눠 이틀로 구성하면서 캠퍼스 풍경도 바뀌었다. 통상 점심시간이라고 부르는 낮 12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수업이 배치되고, 의무화되다시피 하는 ‘복수전공’과 ‘부전공’ 수업까지 채우려면 학생들에게는 공강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강의실을 옮겨 다니는 중에 먹거나 서서 먹거나 아예 굶는 일도 많다. 학생들이 이수해야 할 학점이 늘어나 강의도 많아졌고 강의실 사정도 여의치 않다. 그래서 학교 당국은 10분짜리 쉬는 시간마저도 알뜰하게 모아 강의실을 돌린다. 자료를 찾아보니 1981년부터 실시한 대학졸업정원제와 신규 대학 허가로 학생들이 많아지고 각 대학교마다 강의실이 모자라면서 대학교에서 점심시간을 없애왔다고 한다. 결정타는 외환위기 이후 대학졸업장이 취업 보증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점심시간마저 ‘영양’이 아닌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어른들이 그토록 힐난하던 ‘먹고 대학생’의 시대가 아니라 ‘먹고살자고 대학생’의 시대다. 먹고살기 위해 취업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복수전공, 부전공을 이수하고, 각종 공모전을 준비하느라 점심시간을 죽인다. 학자금이란 빚도 끌어안고 있으니 최소로 학교에 와야만 수업이 없는 날에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다.

점심을 부실하게 때우다 보면 훗날 건강도 땜질을 할 수밖에 없을 텐데. 따로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이들에게 한 시간만이라도 점심시간을 주면 정말 국가적 손실이라도 나는 것일까?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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