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미세먼지는 나중에 죽을 일이고 당장 죽게 생겼어요.” 남도에 내려가서 들은 농민의 탄식이다. 논에 물은 어찌어찌 대었어도 비가 내리지 않아 어린 모가 바짝 말라 바스러졌다며 안쓰러워 ‘죽겠다’ 한다. 그나마 수리답인 논 사정은 낫지만 밭농사는 거덜 났다는 탄식이 이어진다. 시설재배 아닌 다음에야 노지 밭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도시내기들이 미세먼지를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 걱정 중일 때, 농촌은 물 걱정까지 보태졌다.
지독한 가뭄이다. 더 심각한 것은 가뭄의 반복 징후다. 정부와 지자체가 출연한 공공기관의 가뭄 피해와 대책에 대한 각종 보고서를 보았다. 기상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우리나라도 기후변화로 10년 이상 가뭄이 지속되는 ‘메가 가뭄’에 접어든 것 아닌지를 점치고 있다. 어떤 전문가는 10년이 아니라 20년까지도 지속할 수 있다며 적극적인 선제 조치를 주문하기도 했다.
물도 사먹는 시대가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설마 하던 경험이 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최초의 판매용 생수는 ‘다이아몬드 생수’다. 한국 물을 못 믿었는지 1976년 미8군에 공급하던 생수가 이것이다. 그러다 1988년, 88올림픽 공식 생수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외국인 대상이었을 뿐 그때까지만 해도 물을 사먹는 일은 생경했다. 그러다 1995년 생수 시판을 허용하면서 물도 사먹는 시대가 열렸다. 대형 식음료(술 포함) 회사 대부분이 생수 공장을 굴리고 있고 수입 생수도 다양하다.
이제 물은 당연히 사먹는 상품이다. 연간 7000억원에 육박하는 큰 시장이기도 하다. 정수기도 주기적인 관리비용이 들어가니 사먹는 물로 봐야 한다.
모내기철을 놓친 농촌에서는 소방차부터 군대 급수차, 레미콘 차량까지 농토에 물을 대느라 부산스럽다. 여기저기 지하수 관정도 뚫어보지만 지하수도 바짝 말라 있어서 헛수고다. 지하수의 생성 속도가 뽑아 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셈이다. 주류와 식음료의 취수원은 물 좋고 공기 좋은 청정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소비자들에겐 청정지역이지만 따지자면 내다팔 수 있는 것이 자연뿐인 오지마을이다. 그런 곳에 첨단 천공기를 박고 지하수를 뽑아낸다. 환경부담금을 비롯해 지자체에 몇 푼의 돈을 내기는 하지만 워낙 뽑아내는 양이 많다보니 취수원 근처의 농촌은 아무리 관정을 뚫어보아도 지하수가 올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승산 없는 물꼬 싸움은 이미 오래전부터다. 물이 가장 절실한 농촌에서 내다팔 것이 물밖에 없으니 물을 팔다가 다시 물이 모자란, 이 가혹한 역설.
지상의 모든 음식은 물에서부터 시작한다. 요리라는 행위는 불을 다루는 일이기도 하지만 물을 다루는 일이기도 하다. 식재료를 씻어 물을 부어 음식을 만들고, 물로 그릇을 닦아 뒷정리하는 것까지도 모두 물의 소관이다. 무엇보다 식재료를 길러내는 것은 물이니 말이다. 공기와 물이 없으면 모든 생물체는 절멸한다. 그것이 살아 있는 존재의 숙명인데 우리의 숙명은 어찌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오랜만에 단비가 내렸으나 해갈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츨근길 전철에서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열어 포털을 보니 검색어 1위가 ‘가뭄해갈’이다. 2위는 ‘강수량’. 도시인들도 가뭄이 걱정되는 것일까. 여기에서 희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까. 물, 제발 물 좀 주소!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고향세’ (0) | 2017.06.09 |
---|---|
[문화중독자의 야간비행]문화 공유를 아는 ‘중개자’가 절실하다 (0) | 2017.06.09 |
[은수미의 삶터 일터]참여 정치, 대한민국을 바꾸다 (0) | 2017.06.09 |
[기고]건강보험료 모순 바로잡아야 (0) | 2017.06.08 |
[사설]계절 안 가리는 조류인플루엔자 상시 방역체계 갖춰야 (0) | 2017.06.07 |